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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독서모임:함성 (북스터디)

독서모임:함성(2020.06.11)

by 샬롬보금자리 2020. 6. 11.

2020년 6월 11일 10-12시, 샬롬복음연구소에서 4명이 모였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제주도에서 올라온 초코렛

첫번째 발제자: p.159-236 창조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두번째 발제자: p.237-259 역사 속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역사의 동네 탐험하기, 케리그마: 예수님의 죽음)
세번째 발제자: p.259-320 위협: 도덕주의, 근거본문(1) 출애굽기

1. 오늘 나눈 내용

지난 시간에 나눈 놀이터 치우기, 창조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의 전반부를 간단히 리뷰했습니다.

"놀이터 치우기"는, 그리스도가 놀이하는 우리 삶에 통용되는 영성이란 말의 왜곡을 교정하고 논의의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현대적 영성의 논의 특징은 엘리트주의(특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의 구분), 자력구원의 가능성, 복음없는 행복, 메마른 신학의 배격이고, 그 배경은 인간에 대한 축소화, 기능화, 소비주의적 이해가 있습니다. 저자는 두 가지 이야기(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 세 가지 텍스트(창1:1-3, 막1:9-11, 행2:1-4), 네 가지 용어(영성, 예수, 영혼, 주 경외함), 한 가지 춤을 가지고 온전한 영성이 "삶"이며 이는 어떤 비밀이나 지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충만한 생명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창조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고, 하나님이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진정한 창조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불리는 인간, 하나님의 숨(영)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케리그마(복음선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 자신이 창조의 현장에 몸소 계시고 완전히 동참하신 사실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조 자체를 복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영지주의는 모든 탄생이 하나님의 창조사역이며,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로 창조의 땅에 살게 해준다는 것을 부정합니다. 나쁜 창조, 부족한 창조, 타락한 창조의 결과로 이 세상을 바라봅니다. 인간의 평범한 일상(고통스런 출산과 아기돌보는 일, 설거지)에 겹겹이 쌓인 불편과 짜증을 덜어내려고 합니다. 영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비영적인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창세기는 시간과 공간의 창조, 우리가 살아가는 생존세계와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특히 시간과 공간의 접촉이 끊긴 사람들에게 우리가 할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창조의 복음을)를 안내해줍니다. 창세기 1,2장은 시간속에서 이루어지는 창조, 공간속에서 이루어지는 창조를 보여주며, 에덴동산이 좋은 곳이지만 나쁜 일도 일어날수 있는 현실이고 이 안에서 예수님의 삶, 예수님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발표1: 근거본문(2) : 요한복음 / 창조안에서 주 경외함 기르기 :안식일과 경탄

창조안에서놀이하시는그리스도(후반)요약및발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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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 안식을 지키는 것이 리듬을 맞추는 것이라는게 새삼 와 닿는다. 
- 영혼을 연습하는 것, 초점을 맞추는 것
- 천변을 걷는 70세 어르신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내 놀이터에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셔서 새로웠다. 내 삶을 놀이터로 이해하는 것이 좋아보였다. 

발제1. 책의 저자는 안식일과 경탄이 창조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를 보게 한다고 한다. 우리의 삶에서 안식이 정말 창조의 경이를 보게 하는가?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의 경이를 느끼는가?

- 코로나 19로 예배를 안드리다가 다시 예배를 시작하고, 수요예배를 드릴때 사람들이 너무 안나왔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경이를 느끼는 것 같다. 
-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고, 그것을 보려는 의도/마음이 있을때 가능한 것 같다. 
- 실제로 삶이 단순해지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스트레스 안받게 잘 자고 원하는대로 할수 있게 해주면 예배의 경이 느낀다. 
- 직장만이 아니라 사역의 현장에서도 결과가 요구되는데,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주도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때가 있다. 

발표2: 역사 속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역사의 동네 탐험하기, 케리그마:예수님의 죽음)

역사속에서놀이하시는그리스도(1)요약및발제.pdf
0.10MB

발제 2. 책의 저자는 역사는 난장판이고 우리는 인생의 많은 부분을 역사의 잔해물들을 줍거나 청소하는데 보내고 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이런 역사 안에서 예수님이 고난당하고 죽으신 것은 케리그마(복음선포)가 된다. 예수님의 죽음과 우리의 죽음은 쉽게 받아들이거나 결코 좋아할수 없는 일이며, 죽음은 무엇인가가 의도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고, 항상 좀더 나은 어떤 것을 기대하면서 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우리가 죽음을 마주할때 이상하게 느끼나?

- 죽음은 단순히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관문 같다. 너무 지나치게 슬퍼하는게 이상하다. 천국은 이 땅에서의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이상하지 않다)
- 내가 좋아했던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그때가 가장 뜨거운 신앙을 가졌던 때인데) 이유를 묻는 기도를 했었다. 천국의 소망을 알아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상하다고 여겨졌다)
- 성도의 죽음이 안타깝긴 했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과 남겨진 유족들을 보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이상하지 않았는데, 이상해졌다. ㅠ.ㅠ)

발료3: 역사 속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위협: 도덕주의, 근거본문(1) 출애굽기)

역사속에서놀이하시는그리스도(2)요약및발제.pdf
0.17MB

발제 3. 책의 저자는 '하나님의 이름(나는 스스로 있는 자)은 역사의 전환점이 된다. 사람들의 두려움과 미신적 관심을 자극해서, 죽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종교보험을 파는 짭짤하고 복합적인 사업이 오랜 시간에 걸쳐 무너지는 역사가 이제 시작된 것이다.'고 한다. 오늘날 교회는 어떤가? 두려움을 이용해 종교 보험 장사하는 종교가 있나?

- 이단들이 그렇다. 대표적으로 신천지가 생각난다. 사실 신천지는 우리 교회들이 가진 문제점들의 총합이다. 우리 교회 안에 기복주의신앙은 열심으로 복만 받는게 아니라 삶의 고난을 죄와 악에 대한 심판으로 이용해서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것처럼 사람을 사로잡아 지배하려는 것 같다. 

발제. 기독교 영성은 역사의 장에서 구원이라는 게임을 한다. 세상 사람들은 역사의 장에서 다양한 게임을 한다고 한다. 전쟁, 자아, 돈, 교회, 섹스 같은 게임에 참여하면 특별하고 재미있게 살거라고 하면서 자신의 상품을 광고하거나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혹은 우리 주변 사람들은 어떤 게임을 하나?

- 두려움을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데, 아들이 공부를 하고 난 뒤에라도 게임을 붙들고 있거나 유튜브에 빠져있는 것을 보면 못견디겠다. 공부가 다는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하나님이 역사가운데 섭리하시는 줄을 믿어야 하는데.. 공부 게임을 시키려고 한다.
- 독일교육과 비교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이 생각난다. 경쟁구도 안에서 기회가 한번뿐인 이 나라가 안타깝다. 
-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기에 시험 결과가 중요해진다. 하지만 이 일은 혼자서 바뀐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을 실감한다ㅏ. 

 

2. 다음 모임 및 발제

6월 25일 목요일 오전 10-12시

첫번째 발제자: p.321-403.
                      역사 속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근거본문 (2): 마가복음, 역사속에서 주 경외함 기르기: 성찬과 손대접)
                      공동체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공동체의 동네 탐험하기)

두번째 발제자: p.404-465
                      공동체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케리그마: 예수님의 부활, 위협: 분파주의, 근거본문(1): 신명기)

세번째 발제자: p.466-570
                      공동체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근거본문(2): 누가복음/사도행전, 경외함 기르기: 세례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