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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모음

니느웨 (요나)

by 샬롬보금자리 2020. 12. 5.

니느웨 도시 (요나서)

니느웨는 티그리스와 호레르강(현대에는 모술, 이라크 북부)의 합류지역에 위치해 있는 앗수르(아시리아)의 마지막 수도이다(현대명은 쿠윤지크(Kuyunjik). 기원전 7천년에 처음 정착했다. 성경에 따르면 니므롯이 이 도시의 설립자이다(창 10:9-11). 주요 발굴은 헨리 라야드의 지휘 아래 1845년부터 1854년까지 이루어졌다. 아래 그림은 그 때의 발굴 결과로 앗수르 제국 기간(1420-609 B.C.)이다. 기원전 1000년경 앗수르 세력의 부흥기가 있었고 그때 니느웨는 왕의 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는 처음 천년의 상반기동안 번성하는 도시였고, 공공광장, 공원, 식물원, 심지어 동물원 같은 고급 시설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 시대의 위대한 고고학적 발견중 하나는 아슈르바니팔 왕(기원전 669년-627년, 에스라 4:10에 나오는 '오스납발')이다. 도시의 크기는 대략 1850에이커(226만평, 7,486,684 제곱미터)이다. 성경 요나서는 이 시기의 니느웨의 번성하는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욘 3:1-5). 니느웨는 결국 메데와 바빌론에게 기원전 612년에 함락되었다. 침략군은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강물을 댐으로 막아서 주변 벽중에 한 곳을 통해 홍수를 일으켜서 도시에 침투할수 있게 했다.  

창세기 10:9–11 (NKRV)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

에스라 4:10 (NKRV)
10 그 밖에 백성 곧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 함께 고발한다 하였더라

The ESV Study Bible (p. 1691)

그 외에도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1842~1855년에 프랑스의 보타, 1845년과 1874년에는 영국의 레이어드, 래삼(Hormuzd Rassam, 1826~1910), 1927~1932년 영국 톰프슨(Reginald Campbell Thompson,1876~1941), 1954~1955년에는 이라크 고고국이 발굴했다.

네베는 쿠윤지크와 나비유누스, 북과 남 두 언덕으로 구성되어 있다. 쿠윤지크 언덕은 남북의 긴 달갈형으로 되어 있고 남서부에는 센나케리브의 남서궁전, 북방에는 아슈르바니팔의 북궁전이 세워졌으며, 북궁전의 남쪽에 이슈타르 신전과 나브 신전이 있었다. 궁전벽화는 여러 가지 장면을 묘사한 오르토스타트로 장식되어 있다. 아슈르바니팔의 궁전에 부속되는 도서관에서 수만의 점토판이 발견됐으며, 홍수 전설을 기록한 점토판도 있었다. 쿠윤지크의 층위학적 발굴( )로 선사시대의 모든 층이 확인됐다. 나비유누스 언덕에는 지구라트와 주신전이 세워져 있었으나 발굴되고 없다.

 

니네베 출토의 주된 것은 『아카드의 사르곤 왕상』이라 불리는 청동제 인상 두부(바그다드, 이라크 박물관), 『티그라트피레셀 1세의 오벨리스크』외에 『아슈르바니팔의 사자사냥』, 『빈사의 사자』, 『라가슈 점령』,『늪지대에서의 전투』,『음악가』,『엘람 인의 패배』 등을 표현한 오르토스타트 부조가 있다. 출토유물 대부분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니네베 [Nineveh]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참고 아슈르바니팔 왕(오스납발)

아시리아의 왕. 니네베에 대규모 도서관을 건립하여 문학과 학문을 후원하였다. 그의 왕위 계승에 불만을 품은 형 샤마시 슘우킨과 골육 전쟁을 일으켜 서아시아 전토를 동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영토를 엘람에서 이집트까지 확장시켰으나, 국력은 현저하게 피폐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슈르바니팔 [Ashurbanipal] (두산백과)

아슈르바니팔 왕의 사자사냥 니네베 성벽, 아시리아, BC 650년경, 런던 대영박물관 / 미술대사전/네이버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