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게 신앙, 수치의 삶을 멈추고 사랑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신앙으로 살면 어떨까?
우리가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수 없이 들었고, 나도 많이 했었습니다.
도대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삶은 무엇일까?!
기도는 몇시간쯤 해야하고, 전도는 몇명쯤,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구한말 탐관오리들은 새로운 임지에 가면 효자를 잡아들였습니다.
효자에게 네 죄를 알렸다 호통을 치며.. 불효를 물으면 뭐든 얻어낼수 있었습니다.
이는 효자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면에서 효자는 불효를 벗어날수 없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이다는 말을.. 빛이 되라, 소금이 되라는 말로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빛이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설교를 들을 때, 가슴이 뛰며 내가 빛이 되는 상상을 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먼저는.. 내가 빛이 아니라 예수님이 빛입니다.
다만, 나는 그 빛을 받아, 그 빛에 참여함으로, 그 빛과 함께 있기에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예수님이 나보고 빛이라고 하면 그냥 빛입니다. 빛이 되라는게 아닙니다.
적어도 산상수훈에 나오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답게 살라는 말은... 그 정체성에 못미치는 것을 지적하는 느낌을 줍니다.
수치심을 건드는 것입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열을 내게 만듭니다.
힘이 있고, 어떤 일을 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이게 마약같이 고약스럽습니다.
이건 아무리 해도 본전치기하기도 어렵습니다.
애초에 시작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답게가 아니라.. 그냥 ~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답게 .. 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상의 빛, 소금 답게.. 가 아니라 .. 그냥 빛으로 소금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내가 해야 할 인간적인 노력이 배제되는 듯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무조건적이고 말도 안되는 은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그제서야.. 나에게 주어진 자유로.. 사랑할수 있게 됩니다.
사랑이 박탈된 강압에는 부족함과 만족할수 없는 의무만 남지만...
사랑은 나의 나됨을 온전히 받아주며 꼭~ 껴안아 줍니다.
내가 안겼는데.. 내가 손을 들어서 함께 부둥켜 안게 되고...
이제는 누가 누구를 안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가게 됩니다.
그렇게 사랑을 받아서 사랑에 물드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다시 인간이 인간에게...
인간이 만물에게...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는 말은 괜한 멋진 말 있는 척이 아닙니다.
사랑을 받아야 사랑할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사랑해서 혼내는 거라고 하는 말을 합니다.
저는 그 진정성을 신뢰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혼내지 말고... 사랑해주면 좋겠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사이가 좋으면... 행복해집니다.
사실, 하나님의 강압적인 명령이라는 것을 뒤져보면.. 대화 아닌가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해서 직접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온전한 자유로... 원해서 그리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바라기는 우리도 더 이상 십자가를 지우는 신앙생활 말고..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로 자유를 얻고 사랑을 누리는 신앙.
예수님을 사랑해서 나도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들춰매고 열나~ 따라가는 삶...
그렇게... 잘 살고 싶습니다.같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적용: 꽃 묵상.
꽃더러 꽃답게 살라면 꽃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꽃을 몇개나 피워야 하나요?
얼마나 오랫동안 피어있어야 될까요?
어떤 향기를 얼마나 어떻게 풍겨야 하며,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꽃을 꽃으로 보면 하나님이 피워낸 꽃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눈길 조차 주지 않은 곳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녀석들은 하나님이 생명을 주는 증거같습니다.
자격을 요구하지 않고 존재로 대하는 복음이 내 마음과 내 삶에 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에 꽂히면 좋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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