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으신 하나님이 고통을 허용하시는가?
Randy Alcorn/ 번역. 서진
로마서 8장28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좌절스럽고, 끔찍한 사건의 증인이 될때 이 말씀을 믿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로마서 8장28절의 원시적인 구약의 묘사는 창세기 50장 20절입니다.
그 이야기에서 요셉의 형제들은 그를 배반해 그를 종으로 팔았습니다. 수십년이 지난뒤에 요셉은 형제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계획)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계획)하셨나니”라고 말합니다.
요셉의 경우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나쁜 상황에서 최선을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궁극의 선을 위해 나쁜 상황을 사용하셨습니다.(엡1:11 참조) 요셉이 "하나님이 선을 위하여 계획하셨다"고 선언하기 전에 요셉은 형제들에게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45:8)라고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2가지 의도를 보게 됩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성공적으로 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역시 성공적으로 그들의 악에서 선으로 이루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저지른 도덕적인 악들과 결과로 주어진 악들이 드라마틱하게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는 결과로 뒤바뀌도록 주권적으로 일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허용하신다.”는 죠니 에렉슨 타다의 말이 생각납니다.
십자가의 선
십자가는 “악에 대해서 뭐라도 해보지 않으시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인가를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매우 강력해서 위에서 아래로, 우주의 구조 자체를 절반으로 찢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고통을 공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역사로 자신을 집어넣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통받으신 것은 하나님이 고통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임시적인 고통을 예정하셨고 허용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고통을 막을수 있었습니다.
좋은 금요일은 나쁜 금요일이라고 불려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용납할수 없을만큼 나쁜것이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으로 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좋은 것이 나쁜것을 이깁니다. 비록 나쁜일은 잠깐이지만, 좋은 것은 영원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예수님을 그의 고난에서 건져주었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우리들의 고난에서 건져주실수 없습니다. (사 53:10-12; 롬6:5)
고난과 하나님의 목적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썼습니다(빌1:29) 그는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딤후3:12) 예수님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요 16:33)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아벨은 가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모든 선지자들, 그리고 많은 다른 성경적인 인물들은 고난을 받았습니다.(히11장 참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믿는 자들은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고난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오늘날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예수를 믿는 자들)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게 살았습니다.
노예로 팔리고 거짓 고소에 의해 감옥에 보내졌던 요셉은 확실히 일생동안 충분히 견디었습니다. 때때로 그는 포기한것처럼 느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욥과 이야기를 나눠보아도 좋습니다. 열명의 자녀들이 먼저 죽었고, 자신의 몸은 고통스러운 진액으로 덮여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것처럼, 친구들이 그를 비난하는것처럼 느끼면서 살았었습니다. 욥은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라고 까지 말했습니다.(욥3:11) 그러나 욥은 하나님이 “내가 가는 길을 아시니; 그가 나를 시험하신 뒤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고 놀랐습니다.(욥42:5)
좋은 것을 위해 함께 일하기
만약에 우리들 각자가 우리에게 일어났던 가장 좋은 일과 나쁜일을 모두 적어본다면, 우리는 두가지 리스트가 겹쳐지는 것을 볼것입니다-특별히 우리가 오랫동안 살았다면 분명해질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들의 일부를 이루시기 위해서 가장 나쁜 것들의 일부를 사용하십니다. 이 리스트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로마서 8장 28절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고통이 올때마다 그것이 어떻게 사실이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출처: Alcorn, R. (2012, 2016). Why a Good God Allows Suffering. In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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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를 묵상하다가 발견한 글인데, 고통의 문제를 설명하고 있어서 옮겨봅니다.
- 요셉의 고백이 단계적이라는 것(45장, 50장)이 우리가 고통을 수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 고통, 고난의 문제에 대해서 십자가를 하나님의 답변이라고 설명한 점은 탁월한 부분
-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난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 맨 마지막에 나오는 두가지 리스트(인생에 있었던 가장 좋은 일, 나쁜 일 10가지 적어보기?)가 겹쳐지는 것은 참 와 닿습니다.
표면적으로 볼때 고통, 고난은 샬롬이 아닌 것 같지만..
그 고난을 부둥켜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보면, 그 안에서도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샬롬을 누리고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께 대한.. 구원에 대한 소망.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당당함과 용기..
그 샬롬이 오늘 내게.. 이 세대를 사는 형제 자맨들에게 함께 하길 빕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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