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사진출처: 구글)
이땅에 사는 사람들은 잘 살고 싶어합니다. 바르게 행복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지혜와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진리를 깨달으면, 그 진리를 붙잡고 확신하는 바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주변에도 그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진리의 복음(?) 전파는 그 의도를 아름답게 볼수 있지만, 그 과정이 과연 진리의 복음 같은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사랑과 폭력, 하얀 거짓말.. 같은 역설적인 가치들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
1. 고난 당한자의 친구, 검사가 되다.
오늘 본문(욥기 15장)에 나오는 엘리바스는 재앙을 당한 자신의 친구 욥을 위로하려는 선한 의도가 있었음에도.. 오늘 본문은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저주를 하고 있습니다.
욥의 탄식과 답변들에 대한 대답으로 입을 연 엘리바스는 앞선 4장에서 처음 욥에게 말하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2-4절을 보면, 자신의 설명을 귀기울여 듣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 서운한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2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
3 어찌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자신이 지혜로운 자인데 욥이 헛된 지식으로 여기는 것 같다(2), 욥에게 도움되는 이야기를 안듣고 있다(3)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강도를 높여서 욥에 대해서 2가지 문제를 제기합니다.
첫째는, 욥이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욥의 죄악이 입을 주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4-5)
이런 엘리바스의 태도는 4장에서 엘리바스가 욥의 경외함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앞에 의로운 자가 없다는 말을 한 것을 생각해보면, 자신의 말을 듣고 욥이 인정하거나 수용하려는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보다 공격적인 모습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7-16절에서) 엘리바스는 구체적으로 욥의 나이, 지혜와 지식을 언급하며,
욥이 욥의 친구들보다 낫지 않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해 부정한 인간이 함부로 입을 열면 안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욥에 대한 공격을 마치고, 17절부터는 자신의 주장을 펼칩니다.
핵심주장은 악인은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20-25절)
악인은 하나님께 대적하다가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26-35절)
이렇게 15장을 읽다보면, 마치.. 진리의 법 앞에서, 검사의 자격을 확인하고, 죄인의 죄를 지적하고, 죄에 대해 형을 구형하는 고발하는 검사 같습니다.
2. 진리를 앞세운 정죄
악인이 고통을 당하고, 하나님께 대적한 악인은 필경 망한다는 엘리바스의 주장은 참으로 타당합니다. 하지만, 사실 엘리바스의 이 주장은 욥을 공격하는 정죄의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26절의 악인이 하나님께 대적하다가 망한다는 이야기는 신학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였다가..
27절부터 30절까지의 내용은 욥을 염두해두고 정죄할 의도를 포함하고 있는... 악인을 묘사한 내용들입니다.
27 그의 얼굴에는 살이 찌고 허리에는 기름이 엉기었고
28 그는 황폐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돌무더기가 될 곳에 거주하였음이니라
29 그는 부요하지 못하고 재산이 보존되지 못하고 그의 소유가 땅에서 증식되지 못할 것이라
30 어두운 곳을 떠나지 못하리니 불꽃이 그의 가지를 말릴 것이라 하나님의 입김으로 그가 불려가리라
욥이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어버리고, 몸에 병들어 고통하고 있는 것을.. 악인의 전형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또한 욥의 소망을 고스란히 절망으로 바꾸어 놓으려고 합니다.
앞서서 14장에서 욥이 비유로 '나무가 찍히고, 뿌리와 줄기가 죽어도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보며, 주께서 기억해달라'고 하며 자신이 죽을 것 같은 고난중에 있지만 다시 회복될 소망을 그리며 주님이 구원해주시기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엘리바스는 이에 대해 15장 32-33절에서 같은 나무 비유를 들며 망할것이라고 저주?를 합니다.
32 그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인즉 그의 가지가 푸르지 못하리니
33 포도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 같고 감람 꽃이 곧 떨어짐 같으리라
34 경건하지 못한 무리는 자식을 낳지 못할 것이며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불탈 것이라
35 그들은 재난을 잉태하고 죄악을 낳으며 그들의 뱃속에 속임을 준비하느니라
오늘 본문을 읽고 읽을수록, 엘리바스가 화가 많이 난 것 같이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의로움 앞에 인간이 의로움을 내세울수 없다', '악인은 망한다'는 것이 엘리바스가 재앙을 당하여 환난중에 있는 욥에게 이리 행하는 이유입니다.
3. 누가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들었는가?
엘리바스가 욥을 공격할때..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8)고 하며 욥이 알지 못하면서 자신의 말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겼는데,
이 구절은 참으로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역설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욥에게 이리 고난을 허락하시는지 우리는 1장과 2장에서 읽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욥이 듣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못들은 사람, 모르는 사람은... 욥이 아니라.. 엘리바스라는 것을 독자들은 압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지키기 위해 참 많은 희생들을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지키려는 진리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선을 추구하다가 악을 행하고, 복음을 전하려고 비복음적인 일을 자행합니다.
자녀들을 잘 키우겠다고 하다가 학대를 하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돈을 벌면서 돈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빈번히 발생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엘리바스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 자신이 확신하는 것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지혜있는지를 강조하고, 상대방을 규정/판단하고, 그 사람이 한 말을 꺾어 절망을 안겨주려는 태도로 살아간다면... 매우 위험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추구하던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은 절망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일이겠지만(?), 교회나 선교단체 내에서 설교자가 단 위에서 특정인들을 지목하여 꾸중하는듯한 설교(일명, 치는 설교)를 하던 모습들이 이런 엘리바스의 모습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재앙이 욥에게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위무하고 위로하려고 모였던 초심을 잃고..
하나님을 내세워서 그 사람에게 모든 소망을 끊어내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나는 그렇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이..
엘리바스가 욥에게 정죄했던.. 경외함을 그만두게 하고, 죄악이 입을 주관하게 하는 일을..
결국 엘리바스 자신이 행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욥의 아픔을 들여다 볼줄 알고, 욥의 말을 들을 줄 알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고,
내가 아는 하나님을 믿고 당당하게 살면서도, 혹시 하나님의 오묘하심이 어떠한지.. 살피는..
경외함을 붙들고 살아야겠다 싶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듣고 정죄가 아닌 위로, 버림이 아닌 살림의 샬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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