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게 둘러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
검은 장미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줄법한 아름다운 붉은 장미였을텐데..
오늘은 유달리 검게 보입니다.
죽은 것은 아닌데 죽음에 더 어울리는 이 검은 장미가 오늘따라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여기 그 장미를 든 사람, 하나님에게 둘러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이 나옵니다.
2장에서 복과 화를 하나님이 주신다고 고백하며 온전함을 지켰던 욥..
그 욥이 7일동안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 입에서는 자기의 생일에 대한 저주가 나왔습니다.(1-19)
애꿎은 날과 밤이… 자신을 이 땅에 있게 했다고 저주를 합니다.
그 연속되는 저주와 탄식속에서 ..
차라리 내가 없었더라면..하는 깊은 존재에 대한 흔들림이..
어찌하여 내가 죽어서 나오지 않았는지.. 한탄하는.. 아픔이... 느껴집니다.
욥의 개인적인 탄식은..
이내 세상에 대한 탄식과 질문으로 일반화 됩니다.(20-22)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는가…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가..
특히..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에게 둘러쌓여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고통으로 진동하는 자신의 삶을 탄식합니다.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23)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24)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25)
욥의 상태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 있다고 합니다.
욥의 이 탄식과 고통의 신음 앞에서.. 내 몸마져도 고통으로 진동을 함께하는 것 같습니다.
//Suffering raises the difficult questions
of meaning, purpose, and value of life.
검은 장미를 든 사람은 정말 삶에 많은 질문을 갖게 됩니다.
욥을 생각하니.. 내가 어떻게 살까? 무엇을 위하여 살까.. 고민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욥이 하나님을 보며… 자신을 포함한..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들의 인생에 어떤 소망도 발견하지 못하는 이 깊은 절망과 아픔이.. 무척이나 와 닿습니다.
하나님은 이 욥의 고백을 어떻게 들으실까.. 조심스럽습니다.
구약에서 보통 이런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도움에 대한 요청으로 연결되곤 한다고 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고통의 유무가 아닌, 하나님에게 주어진 생명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을 살아가는 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하나님은 이런 고통하는 욥의 고통을 하나도 간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돌보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욥은 그런 하나님이 자신을 둘러싸고 고통을 주고 있다고 여깁니다. 원망은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행간의 의미로는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짙어 보입니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
욥의 이 고백들을 보면서.. 이런 고통의 시간들이 설마 내게도 올까봐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욥이 25절에 말한대로…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한다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다고.. 할까봐 두렵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이미 그런 시간들을.. 한번, 두번, 세번… 여러번 지나온것 같습니다.
차라리 죽음이 내게로 무너져 내리기를 기다리던 그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사람 때문에.. 나 자신 때문에… 삶이 버거운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병상에 누워서, 혼자 책상앞에서, 교회 예배당에서... 눈물흘리고 가슴에 무거운 짐을 잔뜩 쌓아놓고 신음조차 하지 못했던 그날들이 기억납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손을 뻗어도 닿을수 없던 그 깊은 공허함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돌아보아도..
사실.. 어떻게 이겨냈는지, 어떻게 지나왔는지 헤아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조언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아니 조언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만이.. 그 고통의 자리에 서 있을수 있게 하고, 그 고통을 소리내어 말할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것처럼.. 나도 그 고통의 자리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하며 돌보고 싶습니다.
고통을 뱉는 은혜
오늘날은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야기 하지 못하는.. 하면 안되는 것 같습니다.
내게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들에게도 "괜찮아"라고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내 안에 갈등과 어려움들이 좀처럼 내보여지지 않습니다. 약점을 잡히면 영영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는걸까?
그래서 나는 오늘 욥의 절망스런 저주가 은혜가 됩니다. 마음이 시원하고.. 아픔이 위로를 받습니다.
신학적으로 의미를 찾자면..
욥의 이 처절한 저주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인정을 한다는 역설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만큼 아프고 힘들다고 말할수 있는.. 그런 허용이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님이 그 입을 틀어막지 않으시고... 잠잠하신것을 보면... 그래도 되나 싶습니다.
나는 오늘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그리 쉬워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이순간 만큼은 삶에 대한 저주보다는 기쁨과 감사가 있고,
지금 아직은 내일이 기대가 되고 기다려 집니다.
고통하는 자들이 입을 열어 고통을 토로하고 아파할때.. 그 옆에.. 그 앞에 앉아서..
그 짙은 어둠의 탄식들을 함께 하며… 그 아픔의 자리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내 주변에 이미 가득한 고통하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고통을 드러낼수 있도록..
손 잡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얼마나 후회되고, 얼마나 버거운지… 그 눈물 참을수 없는 호흡에…
주님이 주시는 안식이.. 샬롬이 임하기를 응원합니다.
아직도 여전히 어려운.. 그 고통의 자리를.. 내 삶을.. 이 땅에서...
책임있게.. 진리에 대해 헌신함으로, 절제함으로 견디어 내고..
온전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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