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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모음/말씀묵상(소감)

아브라함 vs 리브가 : 나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는 섭리

by 샬롬보금자리 2020. 5. 8.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 - 이삭 - 야곱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조상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세사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우며 지금도 이스라엘의 민족적 정체성의 뿌리가 되는 3대에 걸친 아버지와 아들 관계입니다.

이 중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며느리 리브가(이삭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나이 75세가 되도록 자녀가 없었고,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는 말을 믿고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한 아들 '이삭'을 100세가 되어서 90세된 아내 사라를 통해 얻었습니다. 이 아들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네 마네 소동하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여튼 아브라함은 이 아들이 하나님의 약속한 아들이며 지금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을 물려받을 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창 24:7).

2. 아브라함의 며느리 찾기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은 뒤에 아들 이삭의 결혼을 추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충성스런 종(아마 창 15:2에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라고 불렸던 종)을 불러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24:4)고 합니다. 

며느리를 찾는 미션의 조건은 가지였습니다.

먼저는,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는 이삭의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머물고 있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기는 하지만 그곳 사람들의 삶(아마도 소돔과 고모라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지도)을 보며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삶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두번째 조건은 아브라함의 고향, 족속(친족)에게로 가서 이삭의 아내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떠나온 걸 생각하면 그곳이 하나님을 잘 믿을것 같지는 않아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아브라함이 어떤 이유로 그곳을 떠나왔는지 알고 있기도 하고, 마치 교포들이 외국에 살면서도 그래도 결혼은 같은 민족끼리 하고 싶어하고 그것도 아니면 같은 아시아권에서라도 며느리를 얻기 원하는 마음 같을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그 결혼할 신부를 찾기 위해서 이삭을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가지 말라는 조건을 붙였습니다(6). 남편, 사위감을 보지 못하고 따라나설 여인, 딸을 내줄 집을 찾으라는 말은 무척 당혹스러운 조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사자(천사)를 보내실 것이고, 종을 따라오려 하지 않으면 신부감을 얻지 못해도 된다고 합니다.

이런 조건들을 보면,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구할때, 마치 자신이 75세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고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해 오는 믿음의 여인을 찾은 것 같습니다. 내가 살아온 신앙의 정서가 같은 사람을 찾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조금 무모해보이지만, 신랑이 될 이삭이 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남편에게로 나아오는 여인을 찾아오라고 종을 보냅니다.

Bartolome Esteban Murillo 리브가와 엘리에셀

3. 리브가

놀랍게도 이런 무모한 요구는 종의 순종과 기도로 이어지고, 그 기도의 응답대로 우물가에 나온 리브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물까지 내려가서 물을 길어 올라온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일,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10마리나 되는 낙타에게 배불리 물을 먹이는 일을 자청하는 리브가를 보고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가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적극적으로 결혼을 추진하여 성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결혼이 성사되기까지는 그럴만한 배경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얼핏 생각해보면 아마도 리브가의 할아버지 나홀이었기에, 아브라함의 형제였기에 아브라함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아브라함과 이삭에 대해 설명한 것도 아브라함과 이삭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사는지 파악할수 있게 해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리브가나 그 집안에서 신랑을 보지도 않고 결혼하는 일(구약 시대, 예전에는 그렇게도 한다지만...)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게다가 보통 결혼식은 일주일 이상 잔치를 벌이는 것이 관례인데, 하룻밤만에 아브라함에게 돌아가겠다는 종의 요구에 리브가 스스로 "가겠나이다"(58) 라고 답하는 모습도 대단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의 말을 통해서 이 결혼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즉각적인 순종(고향과 가족을 떠나는)을 하는 리브가의 모습은 마치 75세때 고향과 가족을 떠나는 아브라함을 연상케 합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자신과 닮은 며느리를 찾았습니다.


4. 아브라함과 리브가의 닮음과 다름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고향과 가족을 떠나 약속의 땅에서 살며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의 배우자를 자기 고향에서 얻으려고 했던 일은 잘 마무리가 된것 같습니다. 리브가도 훗날에 자신의 아들 중에 하나님이 택하신 아들이라고 여겼던 야곱의 배우자를 자기 고향에서 얻으려고 합니다(창27:46-28:5). 남편 이삭을 통해서 야곱에게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얻지 말고(28:2),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3)고 합니다. 

실제로 야곱은 그곳에서 아내를 얻습니다.(야곱도 우물가에서 사랑하는 라헬을 만나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여기서 아브라함과 리브가는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아끼는 아들 이삭을 가나안 땅에서 떠나보내기를 싫어했는데, 리브가는 아끼는 아들 야곱을 가나안 땅에서 떠나보냅니다. 하지만 둘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그 근거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아들을 이 땅 밖으로 데려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리브가는 "큰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23)"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아들을 이 땅에서 떠나게 했습니다. 

Jacob and Rachel at the Well, Dulwich Picture Gallery

5. 하나님을 믿는 인생이란.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의 인생도 리브가의 인생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삶을 보면 결단하고 행동하는 면, 타인과 분쟁에서 성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분명히 하나님을 믿고, 그 삶의 중심과 기초에 하나님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흔히 기대하는 거룩하고 성숙한 모습만 있지 않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일을 겪었습니다. 배우자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고 핑계하기에는 엄연히 동의하고 참여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이들을 꾸중하시고 똑바로 살라고 재촉하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실수를 하는 아브라함과 이삭(리브가)을 불쌍히 여기시고(?) 도우십니다. 

오늘 이야기하려고 했던 아브라함과 리브가의 모습은 흥미롭습니다. 어떻게 그런 믿음의 결단을 할수 있을까 싶게.. 자신이 살던 땅과 가족을 떠나 가나안 땅에서 살았습니다. 자신의 아끼는 아들의 배우자는 고향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은 달랐습니다. 누가 맞을까요? 어떤 선택이 올바른 선택일까요?

글쎄... 성경은 어떤게 맞다 틀리다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살아온 삶을 기록으로 우리에게 전해줄 뿐입니다. 각자 자신이 믿는 바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갑니다. 그 선택과 행동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 말씀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맞는 선택을 해서 하나님이 축복하신게 아니라, 잘해보려고 하는데 엉뚱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놀라운 은혜로 도우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그 하나님을 보면 나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는 섭리를 좀 더 가까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창조주와 통치자, 참된 구원의 소망으로 여기는 모든 교회, 모든 기독교인들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리브가처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정, 다른 행동을 합니다. 누군가는 아브라함이 첩을 얻었던 점을 지적하고, 리브가의 편애를 지적하며 잘잘못을 가리는 일에 몰두하겠지만... (그런 성찰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기를 바라며 하는 말입니다) 회개하고 거룩을 곱씹고 다짐하면서도 여전히 만신창이가 되어 좌절하고 우울함을 마주하는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맞는 선택보다는 신실한 선택과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가 아닐까 합니다. 

그 은혜 아래 최선의 신실로 살아가는 친구들을 응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