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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모음/말씀묵상(소감)

[성경 읽기] 사무엘상 18:17-30 다윗이 미갈과 결혼하다.

by 샬롬보금자리 2020. 8. 26.

[기도] 사랑하는 주님. 이 시간 주님 말씀으로 하루를 엽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의 뜻을 알게 하옵소서. 주님을 더욱 알고 주님의 사랑을 누리는 복된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올라오고 있는 태풍 가운데서 이 나라와 제 가정을 지키시고,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이 세상의 고통을 굽어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무엘상 18:17-30 본문요약] 이 본문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첫 시도를 이야기 합니다. 사울은 다윗이 자신의 사위가 되도록 두번이나 요청합니다.(17, 21) 이 결혼을 빌미로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는 다윗을 죽이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왕의 사위가 될 자격이 없다고 거절합니다. 블레셋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 자격이 된다는 것을 알고는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을 좋게 여기고 실행합니다. 결국 사울의 시도(다윗을 죽이려는)는 실패했고, 다윗은 더욱 명성을 얻습니다. 

David and Michal, engraving by Calzi from a painting by Francesco Podesti, from the Album: Exhibition of Fine Arts in Milan, 1844. De Agostini / Biblioteca Ambrosiana / Getty Images

[본문 연구]

[18:17]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기를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

//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로 블레셋 사람과의 싸움을 부추긴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지 않고, 비언어적인 상황으로 자신의 의사(다윗이 싫음)를 드러내려는 것이 타살시도, 거짓말(내 맏딸 메랍을 아내로 주겠다)로 나타나게 된다. 

// 사울은 겉으로 표현하는 말("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과 내면의 생각('내가 직접 죽이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일테지')의 차이가 크다. 이런 삶은 본인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 모두 괴롭기 마련이다. 

// 메랍은 사울 왕의 장녀이다.(“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이스위와 말기수아요 그의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 (삼상 14:49, NKRV)) 사울이 다윗에게 주겠다고 약속했었지만, 다윗의 거절로 결혼이 성사되지 못하고 이후에 므할랏 사람 아드리엘의 아내가 된다(삼상 18:19). 블레셋과의 전투때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에게 왕이 딸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메랍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수 있다(삼상 17:25). 

 

[18:18]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버지의 집이 무엇이기에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

// 다윗은 사울의 명령에 순종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사울의 사위가 될 자격이 없음을 말한다. 이는 사울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사울을 위해 싸움에 나갈 빌미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사울은 자신의 맏딸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 

 

[18:19] 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 결국 사울은 자신이 한 말, 다윗에게 한 약속(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라, 17a)을 지키지 않았다. 

 

[18:20-21]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린지라.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 스스로 이르되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하고
이에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오늘 다시 내 사위가 되리라" 하니라

// 사울의 딸 중에서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울은 그 일을 좋게 여긴다. 딸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은 아빠로서  감회가 남다를 텐데, 사울이 좋게여긴다는 표현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애초에 시도했던 계획(17)대로 자신의 딸을 주고, 그것을 빌미로 다윗을 죽이려는 계획을 다시 추진할 기회로 삼았기 때문이다.

// 사울은 다윗에게 다시 자신의 사위가 될 것을 제안한다.

// 올무: 사울에게 있어서 막내딸 미갈은 다윗을 잡기 위한 올무(덫)이다. 

// 미갈: 사울의 막내 딸이자 다윗의 첫번째 아내이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가고 아비가일과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아들이고(삼상 25:42,43), 사울은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다(삼상 25:44). 하지만 이후에 다시 다윗이 미갈을 되찾아왔다(삼하 3:15-17). 그때 미갈의 남편은 울며 따라오다가 아브넬(장군)이 돌아가라 겁을 주자 돌아갔다. 아마도 사울의 왕권을 계승했다는 정치적 입지 때문에 미갈을 다시 데려왔을 것이다. 미갈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하는 것을 알고는 다윗이 도망갈수 있도록 도왔다(삼상 19:11-17). 하지만 이후에는 다윗이 법궤가 들어올때 하체가 드러나도록 춤을 춘것을 보고 다윗을 업신여겼고 다윗에게도 이 문제를 이야기를 했다(삼하 6:16-23).

 

[18:22]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명령하되
"너희는 다윗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 그런즉 네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하니라' 하라"

// 사울은 자신이 직접 다윗에게 사위가 되도록 제안한 것(21)과 동시에, 자신의 신하들(복수)에게 다윗을 설득하도록 명령한다. 비밀히 말하는 것을 순종해주는 신하들은 사울의 계궤를 알았을까? 사울이 전하라는 말에는 신하들의 의견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 이 표현이 명령으로 주어지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과거 다윗의 시대에는 왕정체제라면 당연한 것이었을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이런 식의 표현이 정치가, 행정가, 기업의 사장이나 담임목사 같은 권위자들에 의해서 생산되고 있다면 이는 부당하다. 사울과 다윗의 문제가 아니라, 사울과 신하들 사이의 문제인 것이다. 

 

[18:23]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다윗의 귀에 전하매
다윗이 이르되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작은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 한 지라

// 결국 사울의 신하들은 사울이 말한대로 다윗에게 전했다. 그런데 다윗은 여전히 자신을 왕의 사위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오히려 신하들의 의견을 반박한다. 

// 다윗과 신하들의 관심은 왕의 사위가 되느냐의 여부이다. 미갈의 사랑은 사울이 사용할 올무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18:24-25] 사울의 신하들이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이러이러하게 말하더이다 하니"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 왕이 아무것도 원하지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백 개를 원하신다' 하라" 하였으니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라

// 사울의 신하들은 다윗의 말을 사울에게 전하고, 다시 사울의 말을 다윗에게 전한다. 여기서 신하들은 자기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주체성 상실을 경험한다. 그 삶은 비 인격적이며 사람을 죽이려는 시도의 도구가 된다. 이런 삶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사울같은 부당한 명령이 없어야겠지만, 신하로서 자신의 의견은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 물론, 신하들은 정말 사울의 표면적 의견이나 그 안에 담긴 계궤를 알고 함께 부화뇌동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신하들 역시 사울과 같은 시기심으로 누군가를 죽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사울의 생각이 따로 표현된 것으로 보아(25b) 사울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장기판의 말이 되었다. 신하의 참된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그 신하가 가진 역량대로 왕을 돕고, 백성을 평화롭게 하는 일일 것이다. 오늘날 어느 정권에 상관없이 행정관료 공무원으로 수고하는 이들이 책임감 있게 행정을 펼치기를 기도한다. 

 

[18:26-27]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다윗에게 아뢰매
다윗이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기므로 
결혼할 날이 차기전에 다윗이 일어나서 그의 부하들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그들의 포피를 가져다가 수대로 왕께 드려 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니
사울이 그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 2번의 설득 끝에 다윗은 신하들의 말을 듣고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을 좋게 여겼다. 그동안의 거절이 자신의 자격없음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번 것은 왕의 소원을 이뤄주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담겨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이방인이라 하더라도) 100명을 죽이고 그포피를 가져가는 잔학상은 오늘날 우리가 논할 주된 주제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의 기준에서는 잔혹한 일이지만, 다윗 시대에 적의 기준과 문화적 인식은 이를 부도덕하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마음 한편이 불편할수 있는데, 이는 우리의 후손들 역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예를 들어, 환경을 파괴하는 삶의 모습 : 자동차 사용으로 인한 대기오염과 사고 위험/ 플라스틱의 무분별한 사용/ 원자력 폐기물)을 두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어떻게 저럴수 있었지? 의문을 표할 게 분명하다. 도덕적 성찰의 자세로 성경을 읽고 느낀 불편함을 오늘날 내 삶에서 구현해 낸다면 그 역시도 훌륭한 반응일수 있다. 하지만 단지 이런 도덕적 비판을 과거 구약의 시대에 던지고 지금의 나를 도덕적 우위에 올려놓는 것은 어리석다는 말이다. 

// 다윗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결혼할 날이 차기 전에 블레셋 사람 이백명을 죽이고 포피를 가져다가 왕의 사위가 되고자 했다. (본래 사울이 이야기한 것은 포피 100개였다(25)) 결국 사울은 그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준다.

 

[18:28-29]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 사울은 자신이 원한다고 말한대로(17, 21b, 25)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다윗은 사울을 위하여 용기를 내어 블레셋 사람 200명의 포피를 가져왔고, 사울의 사위가 되었다. 하지만 사울은 기쁘지 않았고, 다윗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었다. 사울의 두려움과 다윗의 대적되기로 함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계시는 것과 자신의 딸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 때문이었다. 참으로 슬픈 인생이다. 누군가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움이 되는 인생은 그 자체로 비극이다. 이런 삶을 벗어나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이다. 사울이 다윗에 대한 경쟁심 혹은 미움이 생겼다면 이를 하나님께 기도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기도한다고 무엇이 바뀌겠는가라고 예단하지 말고, 일단 하나님 앞에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더라면 이토록 비참한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18:30]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싸우러 나오면 그들이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게 이에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

// 결국 다윗이 사울의 사위되는 사건을 통해서 블레셋 전담처리반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의 이름이 더욱 명성을 얻게 되었다. 아마도 다윗은 사울이 그런 일을 좋아한다고 여기고 열심을 내었을 것이다. 사울의 소원과 다윗의 소원이 엇갈리는 지점이 안타깝다. 사울은 왕이었는데, 왕으로서 직접 할수 있는 일(공적을 쌓은 신하를 칭찬하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는 척하지 않기)을 하지 않고 자신이 다윗을 좋아하고 원수된 블레셋 사람을 제압하면 자신의 딸을 주고 싶어한다는 연기를 함으로 사울의 인생은 다윗의 대적자의 역할로 전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