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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모음/말씀묵상(소감)

[성경 읽기] 사무엘상 19:1-12 죽음의 위기에 놓인 다윗

by 샬롬보금자리 2020. 8. 27.

[기도] 사랑하는 주님. 이 시간 주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읽을때 지혜를 더하여주셔서 하나님을 알고, 내 삶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힘을 얻게 하옵소서.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자들을 위로하시고, 속히 피해가 복구되고 일상을 회복할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수고하는 이들을 기억하시사 새 힘을 주시고, 지혜와 능력으로 많은 이들을 섬기기에 부족하지 않게 하옵소서.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이 멈추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자기 스스로를 돌보며 타인을 배려하게 하옵소서. 병원에서 수고하는 의료진들이 지치지 않게 하시고, 치료받는 이들이 자신을 돕는 자들에게 교만히 행하지 않도록 주님 돌보아 주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무엘상 19:1-24 본문요약] 사울은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 그는 요나단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하지만, 요나단은 이를 거절하고 친구의 무죄를 주장한다. 그 반응으로 사울은 다윗을 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 금새 다시 다윗을 죽이려한다. 다윗을 죽이는 올무로 여겼던 미갈이 다윗을 도망시키고 속임수로 추격을 방해한다. 다윗은 라마의 사무엘에게 도망가서 숨었고, 다윗을 잡으러 온 전령들과 사울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이 임해 예언할 뿐, 다윗을 어찌하지 못한다. 

Michal lets David escape from the window. A painting by Gustave Doré, 1865.

[본문 연구]

[19:1-3]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그가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내가 나가서 네가 있는 들에서 내 아버지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아버지와 말하다가 무엇을 보면 네게 알려 주리라" 하고

// 사울은 자신의 사위가 된 다윗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자기 장남인 요나단과 자신의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심히 좋아했다. 사울의 막내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던 것(18:20,28)과 함께 생각하면, 다윗은 엄청난 사랑의 빚을 지고 있다. 다윗이 그들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먼저 사랑을 받았다. 대조적으로 사울은 자신의 다섯 자녀중에 두명이 자신이 경계하고 싫어하는 다윗의 편에 있다는 점은 속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말을 듣고 친구인 다윗 걱정을 한다. 다윗에게 아버지 사울의 음모를 말하고 피신시키고 이후에 상황을 알리겠다고 한다.

 

[19:4-5]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칭찬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 요나단은 다윗을 피신시킨 뒤에(19:2-3) 사울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것(1)은 다윗에게 범죄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윗이 행한 것이 왕께 죄를 지은 것이 없고, 오히려 선한 것이며(4) 그 일을 사울 역시 기뻐했다는 점(5)을 상기시킨다. 

 

[19:6]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 요나단의 말을 들은 사울은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이 맹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한 맹세이다. 하지만 사울은 이내 그 맹세를 깨뜨린다. 

 

[19:7]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고 요나단이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전과 같이 있었더라

// 사울이 요나단 앞에서 다윗을 죽이지 않을 것을 맹세하자, 요나단은 다윗을 다시 사울에게 가도록 했고, 다윗은 전과 같이 사울 앞에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전과 같이'는 다윗이 군대의 장과 수금타는 자의 역할을 의미한다. 다윗은 블레셋 전투 이후로 군대를 통솔하는 장군이 되었다(18:5). 하지만 다윗은 이전부터 해오던 사울 앞에서 수금을 타는 자의 역할(16:23)도 계속해서 감당했다(19:9)

 

[19:8] 전쟁이 다시 있으므로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죽이매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니라

//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나자 다윗은 다시 전쟁터에서 활약을 한다.

 

[19:9-11]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의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사울이 전령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려 한지라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하고

// 악령이 사울에게 접하자, 사울은 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 

//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 하나님이 악령을 보내 사울이 미치도록 했다기 보다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떠나고 중성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빈 자리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마련이다. 즉,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접했다는 말은, 사울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 있을때를 의미한다. 이는 우리가 찬송가를 틀어놓고 있더라도 악을 행할수 있고, 우울할수 있음을 의미하낟. 

// 이전 같으면 다윗이 수금을 타면 악령이 떠나간다(16:23). 하지만 사울은 그 음악보다 다윗을 주목하면서(18:9)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를 했었다(18:11) 일종의 죄의 패턴이 형성되었다. 단창을 가지고 있는데 다윗이 보이면 그가 수금을 연주하더라도 창을 다윗에게 던진다. 목회자들의 성범죄, 성도들의 죄의 패턴도 비슷할수 있다. 한번은 실수 일수 있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그것은 이제 좀더 쉽게 그 죄의 패턴으로 젖어 들어간다. 

// 다윗은 사울의 창을 피해 도망쳤다. 하지만 사울의 전령이 암살 명령을 받고 파견되었다. 미갈이 다윗에게 이 위기를 알린다. 여기서 미갈은 '다윗의 아내 미갈'이다(11). 애초에 사울은 이 미갈을 다윗을 죽이는 올무로 사용하려 했었다.(18:21) 하지만, 이후에(삼하 6:16-23) 다윗이 왕이되면서 다시 데려온 미갈은 '사울의 딸 미갈'로 등장하며 다윗을 업신여긴다. 

 

[19:12-13]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매 그가 피하여 도망하니라
미갈이 우상을 가져다가 침상에 누이고 염소털로 엮은 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그것을 덮었더니

// 미갈은 다윗이 살아날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윗을 창으로 달아내려 도망가게 하고, 침상에 다윗이 누워있는 것처럼 꾸며놓아 도망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 미갈은 우상을 가지고 있었다. 사울이 하나님께 기름을 부음 받아 왕이 되었지만, 그 당시 다른 나라의 왕들을 흉내내며 우상을 들였고 그것이 아무런 의식 없이 미갈의 집에도 있었다. 다윗은 함께 살면서 이 우상들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문화적인 것으로 여겼을 수 있다. 

 

[19:14-15] 사울이 전령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으려 하매
미갈이 이르되
"그가 병들었느니라"

사울이 또 전령들을 보내어 다윗을 보라 하며 이르되 
"그를 침상째 내게로 들고 오라 내가 그를 죽이리라"

// 사울은 두번이나 전령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으려고 한다. 

 

[19:16] 전령들이 들어가 본즉 침상에는 우상이 있고 염소 털로 엮은 것이 그 머리에 있었더라

// 미갈의 속임수가 마침내 드러났다.

 

[19:17] 사울이 미갈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속여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
미갈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하니라

// 다윗이 도망친 것을 놓고 사울이 미갈의 속임수를 책망하자 미갈은 거짓으로 사울에게 답한다. 미갈이 사울을 설득해서 보냈는데(11) 다윗의 협박으로 사울을 속였다고 한다(17). 다윗을 살리고 자신도 책망받지 않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미갈에 대해 성경은 긍정이나 부정의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19: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 다윗은 도피처로 사무엘을 찾아왔다. 사무엘에게 자신에게 있었던 일,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했다.

// 나욧. 라마 지방의 한 지역, 사무엘과 함께 거하던 장소, 텐트라는 뜻인데, 아마도 선지학교가 있던 곳이었을 것이다. 여기로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왔다가 예언을 하게 된다. 

 

[19:19-20]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나"하매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 다윗이 도망한 뒤에 사울이 다윗의 행방에 대해 듣는다. 여기서 등장하는 그 고발자는 "어떤 사람"이다. 이 "어떤 사람"이라는 익명성은 21절에서도 다시 등장한다.

// 다윗을 잡으러 간 전령들은 선지자들과 사무엘을 본 뒤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들도 선지자 무리처럼 예언하게 된다. 

 

[19:21]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다른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 사울이 다시 나욧에 있는 다윗을 잡으러 전령을 보냈지만, 그들도 이전에 보낸 전령들처럼 예언을 했다.

 

[19:22-24]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도착하여 물어 이르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어떤 사람이 이르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 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 사울이 직접 다윗을 잡으러 라마에 왔다. 하지만 그가 보낸 전령들처럼 그 역시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서 예언을 했다.

// 사울은 예언하면서 옷을 벗었는데, 이 옷을 벗음은 이전에 하나님이 사울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한다는 말과 연관이 있어보인다(삼상 15:23, 28) 구약에서 옷을 벗은 것은 수치의 상징이다.(사20:4)

//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 이 속담은 삼상 10:11에서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고 난 뒤에 예언하던 때에 사용되었던 표현이다. 사울의 과거와 지금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처음에는 긍정의 표현이었지만, 여기서는 부정적 평가가 담겨있다.

 

[묵상 및 적용]

죽음의 위기에 놓인 다윗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한다. 어느시대에든지 정권을 잡은 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주요하게 여긴다. 누군들 그 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싶어할까?! 사울은 요나단과 신하들에게 공개적으로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사울의 아들이었던 요나단은 다윗을 보호하고, 대신해서 사울에게 그 명령이 부당한 것을 변론한다. 사울은 그 변론에 수긍하며 죽이지 않겠다고 했지만, 다시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오고, 사울이 단창을 가지고 있고, 다윗이 수금을 연주할때 죽이려 들었다.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시도는 계속된다. 전령을 보내 집에서 나올때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윗은 사울의 딸인 미갈의 도움으로 창문을 통해 탈출하고, 침상에 다윗이 누워있는 것처럼 해놓아서 전령들이 어찌할수 없었다. 사울은 미갈을 책망했고, 미갈은 자신이 위협받았다거 거짓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도망간 다윗은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로 간다. 사울은 두번에 걸쳐 전령을 보내 다윗을 잡으려 했지만 실패한다. 결국 자신이 왔지만 사울 역시 전령들처럼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예언하는 일을 할뿐, 다윗을 잡지 못한다.

다윗은 죽음의 위기에 있다. 그의 잘못이 아닌데도 그는 사울의 미움을 받는다. 왕의 미움을 받으면 파리 목숨처럼 여겨지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 다윗은 위기의 순간들을 잘 모면한다.  다윗의 어떤 능력이 발휘되거나 힘을 사용해서 억지로 이뤄낸 결과가 아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자녀들에 의해서 보호를 받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을 통해 다윗이 해를 입지 않는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처한 세번의 위기는 모두 다윗이 죽을 것 같은 위기이다. 하지만 다윗은 살아남는다. 도움을 받고,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이런 다윗의 인생은 우리의 실존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도 죽음의 위기에 놓여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마냥 꽃길만 걷을수 없다는 것을 매순간 보여준다. 나의 이익과 다른 사람의 이익이 늘상 충돌한다. 물건을 사려하면 나는 조금 더 싸게 사려고 하고, 파는 사람은 더 비싸게 팔려고 한다. 돈의 액수가 달라지면 눈빛이 변하고, 슬픔이 찾아오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감정이 소모되고 넘실대는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면 하루를 몽땅 망쳐버리기도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온 세상이 위협받고 있음이 더 드러난다. 8.15 집회를 통해 사랑제일교회와 전광훈 지지자들이 만들어낸 상황은 매일 확진되는 수백명의 확진자들과 그들을 추적하고 관리하는 공무원들과 의료진들을 피곤하게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진입여부를 놓고도 의견이 대립되고, 이런 와중에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의사협회의 파업과 업무개시 명령은 힘대 힘의 충돌을 보여주며, 환자들과 국민들의 생명이 위협받는다. 미국에서는 세명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아빠가 경찰의 총에 맞아 하반신 마비가 되면서 다시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들 잘 살고 싶어하지만, 나의 생존이 다른 사람의 무엇인가를 침해하고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은 은혜이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드는데 사울의 아들과 딸이 나서서 다윗을 보호하고 도망갈 길을 여는 것은 내가 어찌할수 없는, 값없이 받는 친구들에게서 누리는 은혜이다. 이익이 충돌하지만, 최대한 배려하고 약속을 기준으로 삶의 자리를 함께 살아가는 자리로 만든다. 코로나로 인해 수고하는 의료진들과 공무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무더운 여름이지만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다. 

여기에 더해서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은혜이다. 여기에는 다윗을 죽이냐 죽이지 않느냐의 차원을 넘어선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누리는 하나님 나라를 현실에서 누리도록 해준다. 사울이 보낸 전령들이나 사울이 해야 할 일은 누구를 잡아 구속하고, 죽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하고, 행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왕의 옷을 벗어내고, 벌거벗어도 부끄럽지 않은 삶이 있다. 사랑제일교회 사태로인해 한국교회가 욕을 먹고 있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예언하는 일을 해야 한다. 스스로 예언자임을 주장하고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무엘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미안합니다" 현수막이 곳곳에 있는 교회에 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면 좋겠다. 그 미안함을 말로 문구로 걸어 붙이는 것보다 더 구체화된 행동이 있으면 좋겠다. 그들이 잘못한 것이지 우리는 잘못이 없다고 억울할수도 있다. 그 마음이든지 어떤 마음이든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고, 나를 주관하려 드는 악령에 의해 사람을 죽이려는 삶을 멈추고 하나님의 일을 말하는 삶의 예언자, 생명의 예언자가 되기를 바란다. 

[마침기도]

사랑하는 주님, 다윗의 인생이 참 곤고해보였습니다. 얼마나 억울할까, 얼마나 긴장될까, 사울에게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상상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묵상하며 소감을 쓰면서, 내 삶, 이 세상을 바라보니 여전히 나의 삶도 이 나라의 운명도 죽음의 위기가 넘실대는 현실인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이 위기 가운데서 놀랍게 나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도 요나단과 미갈같은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내가 살고 있음을 생각하니, 그 친구들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더 나아가 2020년, 지금에도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임재임을 고백하며, 하나님 나라로의 회복을 기대합니다. 누구를 죽이고 누구로부터 도망하고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이 세상에서 입은 직업과 직분, 역할의 옷을 다 벗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생명력을 회복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수고하는 의료진들과 공무원들이 지치지 않도록 은혜를 주시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는 것을 기억하고 갈등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샬롬을 누리는 은혜의 전파자들이 되게 해주세요. 인종차별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을 돌봐주시고, 태풍 바비로 인해 피해 입은 자들을 위로해 주시고 도와주세요. 

주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