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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세상에생명을주는예배

[오전독서모임] 세상에 생명을 주는 예배(2. 성만찬)

by 샬롬보금자리 2021. 3. 4.

2021년 3월 4일 오전 10시-11시50분

오늘은 늘푸른나무, 여행, 유유, 꽃님 이렇게 네명이서 예전으로서의 성만찬, 형식과 본질, 성만찬적인 삶에 대해서 풍성한 나눔을 가졌습니다.

먼저, 꽃님이 책 2장 성만찬 부분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서 맥을 잡았고, 그 뒤에 소감과 나눔, 토론이 있었습니다.

*요약

2. 성만찬

1장에서는 세상이 인간에게 음식으로 주어졌고, 그 음식을 먹고 변화시켜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했었습니다. 이번 2장에서는 그리스도를 죽인 세상의 상태와 기독교의 기쁨에 대해서 다루고 그 기쁨의 차원에서 성만찬의 전체(여정의 시작부터 떠남까지)의 의미를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 여기서는 2가지 사실을 확인한다. [1] 먼저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본래 의도한 삶의 완전한 표현이라는 점이다. 예수님 안에 세상의 모든 삶이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2] 그러나 그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배척당했다(생명인데 죽임당했다. 역설). 그래서 그 결론으로 인류는 발전을 위해 노력하더라도 결국은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본다. 사회복지, 인권, 평화를 위한 연대 같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와는 다르다는 것을 넘어서 결국 종말(자연적 기쁨의 종말, 모든 만족의 종말, 합리적 행복추구로서의 삶의 종말)이 필연적이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기쁨의 성례 - 하지만 기독교는 이런 자연적 삶이 종말을 맞은 상황가운데서 가능한 유일한 기쁨을 선포해왔다. 이 기쁨이 기독교의 모든 활동의 배경이 된다. 이 기쁨은 우리가 정의하거나 분석할 수 없고 다만 이 기쁨에 참여 할수만 있다. 성만찬이 교회가 주님의 기쁨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다. 그렇게 그 기쁨 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래서 세상 속에서 그 기쁨의 증인이 되는 것이야 말로 바로 교회의 소명의 핵심이며, 교회의 본질적 ‘레이투르기아’이며,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성례다.

성만찬 전체(순서)

[1] 여정의 시작(집에서 나섬) - [2] 송영(하나님 나라를 복되다 칭하고 사모함/ 공동찬양, 공동기도) -
[3] 입당(사제가 입장, 거룩하신 하나님 찬양) - [4] 말씀의 예전(평화를 빌고, 복음서 낭독과 설교) -
[5] 봉헌(떡과 포도주를 드림) - [6] 신적사랑(사랑권면) - [7] 마음을 드높임(봉헌물과 함께 자신을 드림) -
[8] 감사와 처음기원(감사와 찬양, 성만찬 기도문 앞부분의 감사와 찬양) - [9] 삼성창(거룩을 세번부르는 찬양) -
[10] 기억의 기도(기도문) - [11] 승천(하늘 식탁에 참여) - [12] 성령(떡과 포도주를 거룩하게 하는 축성) -
[13] 중보기도(성찬 먹기전에 중보) - [14] 떠남(평화가운데 떠남, 선교)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집례자와 회중이 말하는 부분이고,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행동과 의미를 정리한 것이다.

[1] 여정의 시작 - 세상의 삶에서 떠나서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 교회 가는 것, 예배드리러 나오는 것이 시작이다. 

[2] 송영 p.40

/ (집례자)“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나라는 복되도다. 이제와 영원히. 세세 무궁토록~ (회중: 아멘)”
공동찬양, 공동기도와 간구

[3] 입당 p.43

/ 사제가 제단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이 세상을 떠나 새 세상,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 거룩하신 하나님을 교회와 사제가 찬양한다.
/ 여기서 거룩은 이 세상에 없는 천국,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강조한 표현이다.

[4] 말씀의 예전 p.45

/ 사제가 회중을 보고 서서 그리스도를 대신해 평화를 빈다 (집례자)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 이 평화는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화를 의미한다. 
/ 복음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영원히 오시는 부활하신 주님 자신, 부활의 능력과 기쁨을 의미한다. 
/ 할렐루야를 외쳐 복음서 낭독에 현존하실 그리스도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다. 
/ 정교회에서 복음서 낭독과 설교는 예전적 행위로 여기며, 성례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으로 여긴다. 

[5] 봉헌 p.47

/ 떡과 포도주를 드린다. 이는 우리의 삶, 우리 자신, 세상 전체를 드리는 것이다. 
/ 음식으로서 떡과 포도주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 또한 희생제사다. 희생은 사랑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치와 의미를 상대에게 두고 그에게 삶을 바치며, 그 안에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발견한다. 
/ (집례자) “봉헌하는 분도, 봉헌되는 분도 그분(그리스도)이시다” 봉헌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드린다. 봉헌되어야 할 모든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다 봉헌되었고, 그분 외에는 봉헌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 “주 하나님이여, 당신의 나라에서 기억하소서” 기억은 사랑의 행위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신다. 하나님의 기억과 사랑이 이 세상의 토대다. 이제는 성례전을 통해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기억한다. 이 세상과 모든 사람, 창조세계 전체를 기억하고 그것들을 사랑안에서 하나님께로 가져간다. - 그래서 성만찬은 온 세상의 생명인 사랑의 회복이다. 

[6] 신적 사랑 p.51

/ 떡과 포도주를 제단위에 놓고 천으로 덮어 놓는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돌려놓으신 생명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우리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고백드릴 수 있도록 먼저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말하고 평화의 입맞춤을 한다(the kiss of peace)
/ 이는 사랑의 표현인데, 우리가 할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부으신 신적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교회다. 그리스도가 이 사랑을 주셨고, 이 사랑이 성례의 원리다.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된, 가능한)

[7] 마음을 드높임 p.52

/ (집례자) "우리 마음을 드높입시다”
/ (회중) “주님께 우리 마음을 드높입니다.”
/ 봉헌물과 함께 우리 자신을 드높인다. 이는 천국으로 올라가는 승천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식탁에 참여하고, 종말-시간과 공간 너머에서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어 새 생명을 주는 음식으로 먹게 된다. 

/ (집례자)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8] 감사와 처음기원 p.53

/ (회중) “감사드림이 합당하고 옳은 일입니다”
/ 여기서 감사는 완벽한 인간(회복된 인간/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 참여한 우리)이 하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 신앙이란 부족해서 갖는 것이 아니라, 충만과 사랑과 기쁨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풍성한 삶을 살고 받는 것(충만과 사랑과 기쁨)이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이다. 
/ “성만찬 기도(the great Eucharistic prayer)의 서문 부분, 처음 기도/기원에는 감사와 찬양이 담겨있다. 

성만찬 기도 처음 부분(처음 기원) p.54

“ 우리가 주님을 노래하고, 주님을 복되다 이르며,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이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서 주님을 찬미함은 합당하고 옳은 일입니다.(찬양과 감사 부분) 주님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으며, 다 파악할 수 없고, 보이지 않으며, 불가해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찬양과 감사 이유가 되시는 하나님) / (여기부터는 주님은 어떤 분인지 고백) 주님은.. 분이십니다. 주님은.. 존재케 하셨고, 주님은.. 떨어져버렸지만, 주님은.. 들어 올리셨습니다. 주님은.. 그치지 않으십니다 ... / 이 모든 일로 인해 우리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결론적으로 감사)

/ 성만찬 역사 신학자들은 이 부분을 간과하곤 하지만, 이 감사와 찬양 없이는 성만찬 전체를 이해할수 없다. 
/ 감사와 찬양으로서의 성만찬은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과 회복하셨을 때 주신 새로운 생명의 형식이며 내용이다. 

[9] 삼성창 p.56

/ 삼성창: 거룩을 세 번 부르는 찬양

거룩, 거룩, 거룩, / 거룩을 3번 부름 -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해
만군의 주님.
하늘과 땅은 주의 영광으로 충만합니다. / 하나님께 영광 돌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복되시도다. / 예수님에 대한 찬양 - 복되시다. 

/ 이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 이는 창조의 목적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함(감사, 성만찬, 찬미)을 통해 창조세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 이 거룩의 찬양이 창조의 시작이며 원리이기 때문에.. 

[10] 기억의 기도 p.57

[1] 거룩 인정 – [2] 하나님이 하신일 – [3] 예수님이 하신 일 – [4] 예수님의 성만찬 말씀 – [5]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십자가, 부활, 승천, 보좌우편에 앉으심)을 기억함 – [6] 봉헌 고백

기억의 기도(기도문) p.58~59

영광스런 위엄 가운데 계시는 주님,
 
주는 거룩하고 지극히 거룩하십니다. ___
거룩인정 
주는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주의 독생자를 주셨고
그 분을 믿는 자는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우너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______ 하나님이 하신일
그분은 오셔서 명함받은 모든 일을 우리 위해 다 행하셨고
잡히시던, 아니(오타?)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던 그 밤에
거룩하고 순결하며 죄 없으신 손으로 떡을 취하시고
감사드리시고, 그것에 축사하시고, 그것을 성별하신 후
그것을 그분의 거룩한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____ 예수님이 하신 일
받아 먹으라
이는 죄사함을 위해, 너희 위해 부서진 내 몸이다.
또한 이와 같이 식사 후에
그분은 떡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전부를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위해 너희와 많은 이들을 위해 흘리는
새 언약의 내 피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예수님의 말씀
이 구원의 명령과 
우리 위해 일어난 이 모든 일들
그 십자가와 무덤과 삼일 만의 부활과
천국으로의 승천과, (성부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으신 것과 
영광스럽게 다시 나타나실 것을 기억하며_________ 십자가죽음-부활-승천 /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함
우리는 이제 당신의 소유인 것들을
모두를 대신하여, 모두를 위해 당신께 봉헌드립니다. _____ 봉헌

 

[11] 승천 p.60

/ 지금까지 승천의 성만찬을 통해 나와 세상을 봉헌하며 하나님 나라 식탁에 참여했다. 
/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생명의 선물로 그 모든 것을 다시 음식(그리스도의 몸과 피, 그리스도 안에 새로워진 세상)으로 돌려 받는다. 
/ 이 새로워진 세상, 삶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던(하나님이 주셨던) 세상과 다르지 않다. 
/ 그리스도안에서는 이미 새로워진 세상이 우리 안에서는 아직 그렇지 못한 동일한 세상이다. 
/ 그리스도는 완전한 성만찬 삶을 사셨다. 세상을 음식으로 먹고 마시며 생명을 누리며 삶을 하나님과의 교통으로 변모시키고, 하늘로 올려졌다. 
/ 이제는 자신이 이룬 영화로운 삶을 우리와 나누신다. 그 의미로 (집례자) “받아 먹으라”
/ 그 떡을 받으면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삶을 새롭게, 하나님과 교통하고 그분의 현존과 사랑의 성례로 만든 것을 실감하게 된다. 

[12] 성령 p.63

/ 축성(떡과 포도주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성령님의 사역을 가리킨다. 
/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작을 가리키며, 성령 안에 있는 것이 천국 안에 있는 평강과 희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성만찬을 통해 우리가 천국 승천을 확인하시는 분, 우리가 봉헌한 성물을 주님의 몸과 피가 되게 하는 분이 성령이시다. 

[13] 중보기도 p.64

/ 성찬을 먹기 전에 중보기도를 한다. 
/ 떡과 포도주는 인간의 죄를 위해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떠올리게 한다. 
/ 승천해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는 순간에 세상을 기억하고 기도하게 된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게 해준다. 이것이 바로 교회 선교이 시작지점이다(성만찬과 선교와의 연결). 
/ 성물을 받을 자격이 있거나 준비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선물로서 주어진다. 그래서 정교회에서는 성만찬 성물을 거룩한 선물이라고 한다. 
/ 앞에서 말한 “받아 먹으라”는 말에 “예”라고 기쁨과 감사로 말하고 성만찬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14] 떠남 p.66

/ 집례자가 “평화가운데 떠납시다”라고 말한다. 예전의 마지막 명령이다. 천상에서 다시 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 새 생명을 가지고, 구원과 구속을 위한 증인으로 나아간다. 
/ 교회의 선교가 성만찬과 연관 있는 이유는 성만찬이 떡과 포도주만이 아니라 승천의 예전에서부터 전체로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눔

- 책을 통해 성만찬 순서/형식이 담고 있는 의미들이 새로웠다. 정교회가 초대교회 전통을 거의 보존하고 있다는 점을 볼때, 3시간 넘는 예배도 그 의미를 생각해봄직 했다. 꼭 3시간 예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에 맞게 그 의미를 살려 적용하면 좋겠다. 기회가 닿는다면 정교회 예배에 한번 참석해보거나 사제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정교회는 저자가 설명하는 이런 의미로 매주 예배를 드릴지 의문이다. 저자도 인정하듯이 정교회 내에서도 그저 형식으로 여겨지고 오해될 것 같다.
- 우리가 속한 교회(장로교 전통)들이 다양한 예배 순서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송영, 참회의 기도, 고백 등등) 그런데 어느날부터 찬양과 말씀에 집중하기 위해 형식을 대거 수정했다. 참석자들에게 의미있게 와닿는게 주어지는게 중요한 것 같다. 
- 기쁨은 설명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가 잘 담겨 있는 것 같다. 신비롭다. 
- 가인과 아벨의 예배가 생각났다. 형식이 거룩하면 나도 거룩해질것 같은 기대도 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3시간 예배든 10분 예배든 형식보다는 그리스도 중심(하나님과 연결되는) 예배가 되어야 할것 같다.

Q. 예전이란 무엇인가?
A. 1장 요약 글에서 정리한 것 참조.
- 예전은 리투르기아Liturgia(일_ergos과 백성_laos의 합성어로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모여 하는 일'이란 뜻, 예전으로서의 의식/순서 형식)로 예배를 의미합니다. 칼빈은 말씀과 성찬, 이 2가지만 예전으로 보았고, 예배 시간마다 말씀의 예전(오늘날 예배)을 먼저 하고 그 뒤에 성만찬 예전(오늘날 성찬식)을 했습니다.
-  이와는 달리 카톨릭과 정교회는 7가지를 성례(성사)로 인정합니다.(#1 영세/세례, #2 견진성사/안수, #3 미사, #4 고해성사, #5 종부성사/병자나 죽을 위험에 있는 사람이 받는 성사 , #6 결혼, #7 서품/신부 되는 것/목사안수개념) 
- 기독교 개신교 내에서도 각 교파마다(혹은 교회마다) 저마다 특징을 가지고 예전(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Q. 과거 혹은 오늘날에도 예배를 3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형식의 의미를 이해하고 집중하며 참여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A. 결혼식에 참석해보면, 결혼 당사자나 결혼하는 커플과 가까운 사이일수록 순서/형식 하나 하나의 의미를 소중하게 여기고 참여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 결혼하는 것만 보고 그냥 밥먹으러 가거나 결혼식에 참여한 사람들과 수다 떠는 일을 더 좋아하더라. 그런 것과 비슷하게 생각해볼수 있지 않을까?

Q. 1장에서는 '이 세상을 하나님이 주신 음식으로 먹고/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사장적인 삶, 성만찬적인 삶을 살라"고 했었다. 그런데 2장에서는 그리스도를 배척한(예수님의 순종적 죽음이 아닌 세상이 하나님을 거절해서 예수님을 죽임) 세상에 더이상 만족과 절망이 없는 상태를 설명하면서 '이 세상(절망 뿐이고 종말을 맞은)에서 저 세상(하나님의 은혜의 나라)으로 가는 예배로서의 성만찬'을 소개한다. 뭔가 서로 안맞는 것 같다?! 
A. 1장은 전체 개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고, 2장은 성만찬을 통해 그 성만찬적 삶(세상을 하나님이 주신 음식으로 먹고 변혁시키는 삶)을 살자고 하는 이야기인것 같다. 성만찬 시작지점에서는 절망뿐인 세상과 그런 세상에서 가능한 유일한 기쁨으로 나아오는 예배를 중요하게 설명한 것 같다. 
  예배는 크게 2가지로 볼수 있다. [1]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예배가 있고,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재하는 예배로 이해하기도 한다. [1]의 경우에는 우리 삶의 자리를 떠나야 하나님을 만날수 있고, [2]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이 강조된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는 관점보다는 강조점을 이해하는게 좋을 듯 하다. 

Q. 1장을 보면서 크신 하나님이 좋고 새롭고 자유로워지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경건의 형식을 놓쳐버리고 점점 게을러지는 것 같다(코로나 시대 온라인예배를 드리다보면 더욱.. ㅠ.ㅠ). 어떻게 균형점을 찾을수 있을까?
A. 본질을 지키기 위한 형식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어떨까 싶다. 고정된 정답에 사람을 맞추기 보다, 크신 하나님의 틀 안에서 충만과 감사와 기쁨, 사랑에서 우러나는 형식을 입히면 좋겠다. 


책 내용을 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한 글은 다음 글을 보시면 됩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는 예배 2장 요약

세상에 생명을 주는 예배  2장 요약 (p.31-67) 2장. 성만찬 그리스도의 십자가 p.31 1.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삶의 완전한 표현이셨다. 세상의 모든 삶이 예수님의 삶 안에 하나로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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