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5일 오전 10시-11시50분
오늘은 비스킷, 늘푸른나무, 여행, 유유, 꽃님 모두 함께 만나서 노래도 듣고 책도 읽고 동네 반상회와 학교 동문회까지 풍성한 모임을 이뤘네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해주는 노래를 소개해보자고 했는데 다음 곡들이 나왔습니다.
이름 내기 위해 살아가는 듯한 이 세상에서 이름 없이 존재하는 것들, 그 삶들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해준다.
심수봉은 이 노래에서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을 생각했다고 한다. 예배 끝날때 세상으로 나아갈때 부를 법한 노래 같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어 수백만송이 꽃을 피는 세상을 그려보게 된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깃들어있는 하나님의 시선을 보는 듯 하다. 가을마다 듣는 노래. 딸각딸각 아침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냉수찾는 게으른 아들의 어울림 속에서 행복을 엿보게 된다.
최근 한달사이에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노래인데하나님이 나를 향해 부르는 노래처럼 듣게된다.
트롤, 월드투어(드림웍스, 트롤 2 만화영화)
내 노래를 지키기 위해 다른 노래들을 없애야 할 것 같은데, 다양한 노래들을 통해 내 노래를 찾는 내용이 하나님 나라의 다양성을 담은 듯하다.
음악감상도 골고루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독서모임의 정체성을 살려서 책을 읽고 느낀점, 질문들을 나누었습니다.
*요약
1. 세상의 생명
1장 '세상의 생명'에서는 크게 4단락에 걸쳐 생명을 설명하고 이 책의 목적(성례주의의 진정한 의미)을 소개합니다.
생명의 본질 - 하나님은 인간을 먹는 존재로 창조하셨고, 이 세상을 인간의 먹을 것으로 주셨다. 잔치 이미지로 생명을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내에서 논의되는 생명에 대한 이해는 크게 2가지를 들수있다. 종교적인 삶, 세상에서의 삶이다. 사람이 먹고 마시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것은 다 '살기 위해서', '충만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다. 그 생명에 대한 기쁨이 있어야 한다. 그 생명과 기쁨 없는 삶은 어떤 행위든(영적이든 세속적이든) 의미가 없다. (*키워드, 인간은 그가 먹는 것이다, 생명, 기쁨)
인간의 본질 - 인간은 먹어야 사는 존재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먹어야 한다. 피조물중에서 인간만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름을 짓는 것이 찬양과 연관되어 있다. 인간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받아서 하나님께 바치는 존재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먹는 것이 먹는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키워드, 하나님을 향한 배고픔, 이름/송축, 제사장, 성만찬(하나님께 받아서 하나님께 바친다), 의식으로서의 식사)
인간의 타락 - 선악과는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먹는 것은 하나님과 교통이 아니라 그것 자체와의 교통이다. 하나님 없는(하나님을 보지 않는) 삶, 이런 경시가 원"죄"다. 그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잃어버렸다. 그 결과 인간은 더이상 제사장이 아니라 세상의 종이 되었다. (*키워드, 세상 그 자체와만 교통, 하나님 경시, 닫힌 원, 세상의 종, 생명을 잃어버림)
예수 그리스도 - 인간 타락의 참 본질은 현재 인간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물질적인 것으로(하나님을 경시하는 세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서 다시 생명을 주신다. 구조행위가 아니라 태초부터 하던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갈망의 참 대상이 무엇인지 알게하는 것). 예수님은 종교가 아니라 새 삶을 시작하셨다. (*키워드: 타락의 참 본질, 모든 종교의 마침, 새로운 삶을 시작하신 분, 생명)
이 책의 목적 -이 책은 (정교회의) 성례를 교회의 제도로 이해하고 신비주의 영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선교와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바로잡고자 한다. 종교의 마침이라고 했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삶(생명)이 담긴 성례주의를 어떻게 담고 있는지, 성례주의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고자 한다. (키워드: 성례, 신비주의, 선교, 종교의 마침, 성례주의)
*나눔
- 그동안 창조와 지상명령에 대해 다스림으로 이해했는데, 먹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새로웠다.
- 다스림으로 이해하면 인간(나)은 다스려야 할 책임과 의무가 주어지고 이를 위한 능력이 필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인간이 피조물보다 높다는 의식이 자연스레 생겼던것 같다.(목적지향적 태도) 그런데 먹는 것으로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세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고 우리는 의존적인 존재라는 점을 인식하게 해준다.
Q. 하나님께 받아서 감사함으로 누리며 순종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맞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잊고 다시 영적인 것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사는 사람들이 생기는것 같다. 그런데 이들을 포이어바흐 같은 유물론자와 같이 취급하는 것은 정당한가?
A. 그 세부적인 위치에 있어서는 유물론자와 영적인 추구자는 사실 다르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바(이 세상이 하나님이 주시는(내가 먹으라고) 것이다)를 간과하고 살아가는 삶은 모두 같은 편에 속한다.
Q. 코로나 시대에 모이기를 강조하는 목회자, 교회들이 강조하는 것은 예배에 대한 강조인데 그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A. 인간의 본질을 먹는 존재로, 제사장적 존재로 볼때 예배와 예전에 대한 강조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형식 그 자체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저자의 말에 비추어 생각해볼수 있을 것 같다(p.17, 23). 오히려 그 예배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속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차원에서 다양한 창의력을 발휘해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가나안 성도들의 개인적 신앙행위는 이후에 진행되는 성례전(2과)에서 강조하는 부분에 비추어 고민해봄직 하다.
책 내용을 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한 글은 다음 글을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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