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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모음

목사들이 유의해야 할 치명적인 7가지 죄들

by 샬롬보금자리 2018. 7. 14.

*다음 글은 Logos에서 제공하는 블로그에 소개된 글을 개인적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The Seven Deadly Sins of Pastoral Ministry이란 제목으로 Jake Mailhot이 쓴 글 - 데이톤 하트맨의 책 "목사들이 믿는 거짓말들" 내용 일부를 발췌해서 제공한 내용)



The Seven Deadly Sins of Pastoral Ministry

Jake Mailhot / Fri, October 27, 2017 


목사들이 유의해야 할 치명적인 7가지 죄들


우리 모두는 우리의 매일의 삶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정체성들에 관한 거짓말들을 믿도록 유혹받는다.  데이톤 하트맨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시는 은혜로부터 떨어져서 문자그대로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거짓말을 믿는 기계이다”그러나 하트맨은 목회자들이 목사로서의 정체성과 관련되어서 자주 믿는 유일한 거짓말이 있다고 확신했다. 


하트맨은 그의 새로운 책, 목회자들이 믿는 거짓말들(Lies Pastors Believe)에서 어떻게 작은 거짓말이 큰 문제를 일으킬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목회자이자 신학교 교수였던 자신의 경험들을 근거로 이런 자기 속임(거짓말)들에 대해 정면으로 태클을 걸었다. 매력있고 붙침성있는 하트맨은 지금과 미래의 목회자들에게 왜 이런 거짓말들이 매우 유혹적이고 그들이 할수 있는 손해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믿고 적용함으로 이것들에 저항할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다음 간략한 인용구에서, 하트맨은 목회자들이 믿는 7가지 다른 거짓말들을 폭로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그것들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지 힌트를 주었다.



1. The Visionary (확실한 비전의 소유자)


“예수님께서 나를 이 운동(무브먼트)을 이끌도록 부르셨다."(거짓말)

“이 거짓말의 중심에는 우리 자신의 은사에 기초한 중요성, 타당성, 인정받음, 그리고 영향력에 대한 갈망이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교만이다."(이유)


“우리가 교회가 우리 교회라고 믿기 시작할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다. 우리가 회중들로 하여금 '죄인들이 구원받는 것'이 남자와 여자들의 마음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 때문이라기 보다 우리의 솜씨좋고 매력적인 설교 때문이라고 믿도록 허락할때, 우리는 사람들의 소망을 빼앗아서 우리(목사)의 어깨에 올려놓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회중들의 소망이 될수 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들의 소망이 될수 있다. 우리의 직업은 우리의 비전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역할은 죄인들을 구원하고 세대를 변화시킨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알리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주는 희망은 우리가 그들을 복음으로 변화되는 흥미진진한 미래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미 복음으로 변화된 세상을 보증하기로 값을 지불하셨다는 것이다. 




 2. The Iron chef (철인 요리왕/ 미국에서 방송된 요리사들의 요리대결 프로그램)


“아무도 그들을 나처럼 먹일수 없다. “(거짓말)

“목회자인 당신이 강단에서 어떻게 확신하고 있든지에 상관 없이, 당신은 당신 앞에 있었던 수많은 목회자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이유)


“당신이 성경본문과 대화하는 당신의 능력이 전혀 자랑스러워할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때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설교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ㄸ- 당신은 이런 긴장감들을 만났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설교자가 되도록 노력하면서도 강단에서 겸손이 더하게 할수 있을까?” 나는 모든 상황에 맞는 한가지 답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추천하는 두가지는 집중하여 듣기와 넓게 읽기이다. 




3. The Achiever (달성자, 성적 우수자, 고득점자, 어떤 업적을 행한 사람)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이것을 얻었습니다”(거짓말)

“이런류의 동기부여들에는 목회자로서의 역할이 당신이 어쨌든 어떤 가치있는 자라는 것을 알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이유)


“당신이 자신의 만족이나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얻으려는 어떤 시도를 하든지간에, 목양 사역은 그것을 공급해주지 않는다. 당신이 당신의 과거에 대해 보상하려고 어떤 시도를 하든지 간에, 예수님은 이미 그것을 주셨다. 예수님은 당신의 초라한 월급이 필요하지 않다. 성취욕을 허가 받기 위한 모든 시도들은 반복음적(anti-gospel)인 가정에 기초해 있다. 그리스도안에서 당신은 이미 의미있는 유일한 인정(용납)을 받았다. 




4. The Called


“나는 목회자로 부름받았다”(거짓말)

“교회는 소명을 그래서는 안되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재정의 한다: 어떤 사람이 목회사역을 위해 돌이킬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받았다는 주관적인, 입증 불가능한 관념(이유)


“사도 바울이 장로가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언급할 때, 바울은 교회를 섬기려는 열망을 가진 이들을 역량의 관점에서(in capacity) 말했다. 디모데전서 3:1-7에서 바울은 디모데(와 교회)를 불러서 갈망을 시험해보라고 했다. 디도서 1:5-9에서도 비슷한 검증목록을 제공했다. 목사가 되려는 사람에 대한 검증을 위해 바울이 제공한 모든 자격들은 실제적으로 인격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했다.

 바울은 디모데를 불러서 목사가 될 사람의 도덕적 인내,아내에대한 신실함, 그의 행동(공적으로 사적으로), 그의 아이들에대한 태도, 개인적인 물질 관리, 그리고 어떻게 주변사람들과 관계를 맺는지를 관찰하라고 했다. 어디에서도 바울이 주관적인 부르심을 언급하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그러지 않았다! 추가적으로 말하자면, 바울은 은사에 대해서는 한번 언급했다. ‘그는 가르칠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목사가 은사있고 매력적인 소통가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바울의 관심은 본문의 주제와 정확하게 소통하는가였다. 




5. The Holy Man


“나의 드러나는 거룩함은 거룩함에 대한 나의 추구보다 중요하다”(거짓말)

“만약 당신이 당신의 교회가 당신을 죄없는 자로 봐주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그들이 오직 예수를 보아야 하는 길에서 당신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이유)


“우리가 거룩한 사람의 신화를 고집할때, 우리는 실제 거룩함에 대한 추구보다 드러나는(사람들이 알아차리는) 거룩을 가치있게 여기도록 우리 마음을 훈련하기를 시작한다. 내가 사역을 준비할때, 나는 회중들의 눈 앞에서 그리스도의 거룩을 확실히 보여주었다고 들었다. 그 결과, 내 사역 초기에, 나는 개인적인 삶에서 죄를 없애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순간들에 나의 거룩한 공적 이미지를 관리하려고 열심히 일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것은 단순히 부정직한 것이 아니라 완악함의 경계였다. 내가 이 신화를 따른 것을 깨달았을때, 나는 다시는 나 자신을 그런 속임에 빠지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6. The Anti-Family Man


“나는 내 사역을 위해 가정을 희생해야만 했다”(거짓말)

“당신이 영혼들의 구속과 성활를 추구하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 가족을 희생시킨 것을 합리화 하기 쉽다.”(이유)


“당신의 신부가 있는데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매우 정신나간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만약 당신이 결혼했다면, 당신의 최고의 소명은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의 최고의 소명은 목사 남편, 목사 아빠가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 가족보다 교회를 선호한다면,  이 직무태만에 따른 부수적인 충격이 앞으로 목양해야 할 당신의 가장 중요한 양떼를 돌보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양떼는 수백명이되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월급을 주지도 않을 것이지만, 당신의 최우선 책무이다. 




7. The Castaway(버림받은 사람, 난파를 당한 사람)


“나는 이 섬에 홀로 남은 사람이다”(거짓말)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체, 관계, 우정을 필요로 하지만 목회자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인간성을 부인하는 거짓말이다”(이유)


“목사로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우리의 교회를 복음에 의해서 창조된 공동체의 종류로 의미있는 언약의 가족으로 불러야 한다. 사도행전의 앞부분을 보면, 우리는 믿는자들이 함께 살았던 것을 발견한다. 만약 우리가 똑같이 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먹으러, 일하러, 함게 놀러 교회로 올라고 할수 있겟는가?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과 초대 교회 리더들이 믿는 자들의 매일의 삶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분리했다는 내용을 볼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게를 맺으면 살았다. 예를들면 바울은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와 함께 일하고 함게 살았다(행 18장)



*출처: https://blog.logos.com/2017/10/seven-deadly-sins-pastoral-ministry/?utm_source=feedburner&utm_medium=feed&utm_campaign=Feed%3A+LogosBibleSoftwareBlog+%28Logos+Bible+Software+Blog%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