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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모음

[책을 읽고]함께 먹고 싶은 빵이 생겼다

by 샬롬보금자리 2018. 8. 24.

<출처: 구글 이미지>


도서관에 갔다가 손에 잡히는 책이 있어서 빌렸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더숲, 2016


일전에 유튜브로 이 책을 간단히 리뷰해주는 것을 본 기억이 나서였을수도 있고, 빵을 만들면서 자본론 운운하는 그 배포가 혼자서 연구소를 한다고 소꿉장난하는 건 아닌가 회의감이 드는 나 자신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튼, 나는 이 책을 집어들고 아주 쉽게 넘어가는 책장을 넘기다가 마음에 남는 부분이 있어서 정리하려고 포스팅을 하기로 했다.


1. 문제제기와 대안으로서의 빵만드는 삶

저자는 기술이 발전하면서도 사람들의 삶이 윤택해지지 않는 현상에 문제를 느끼고, 그 대안으로 빵만들기를 선택했다. 빵 만들기를 통해 경험한 이스트와 천연균의 차이를 들어 발효와 부패의 차이를 짚어가며, 부패하지 않는 돈과 기술에 의존하는 인간의 탐욕을 읽어낸다. 

그는 시골에서 빵집을 열고, 다른 집보다 비싼 가격에 천연균으로 발효시킨 빵을 판다. 그리고 직원들과 그는 일주일에 3일(발효1일 포함 4일)만 일한다. 나름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이윤을 없애겠다는 목표의 실천이다. 

<다루마리 빵집 내부 전경, 출처:책내 삽입 이미지, 구글>

2. 흥미로운 점 - 자본주의(돈)와 사람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인용해가며, 자본론을 비판하는 대목이 신선했다. 예수님께서 거론하신 하나님에 필적하는 우상이 "돈"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아니 좀더 솔직하게 지금도 통장 잔고를 보며 불안함과 안정감을 저울질하는 삶을 보면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이고 나름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 멋졌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주장에 동의하며 자신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위해서 제빵을 하려고 했는데, 제빵을 하려다 보니 자본주의의 한 가운데 서있게 되었다고 했다. 재료선정, 직원고용, 빵만드는 과정이 모두 돈과 관련되어 있었고, 그 이득을 남겨야 생존할수 있는 치열한 전쟁터로 묘사한다. 이는 "믿음"으로 살아보려는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주하는 "현실"과 쌍을 이룬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준비한 직장에서 요구 받는 것은 생존을 위해 당연시되는 경쟁과 차별의 한 복판이다. 사회복지를 하든, 상담을 하든 목회를 하든 직장으로서의 그곳에서는 내가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는 엄연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초월적인 믿음으로 승화하던지, 현실적인 믿음으로 타협하든지 하는 것과는 다른 이름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저자의 빵만들기가 참 매력있고, 작은 가능성을 상상할수 있게 해준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독일어 표지, 출처:나무위키>


3. 하이라이트 - 천연균(천연효모) vs 배양균(이스트)

내가 꼽은 이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수 있는 중요한 통찰은 제빵사로서의 경험에서 들려주는 천연균과 이스트의 차이, 발효와 부패의 역할이다. 

먼저, 발효와 부패는 모두 미생물에 의한 유기물의 분해현상으로 동일하지만, 인간에게 유용하면 발효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부패라고 한단다. 이게 천연균의 특징이라는데, 인간이 먹어도 괜찮은 생명력을 가진 음식은 발효를 시켜서 빵이나 와인으로 만들어주지만, 먹으면 안될것은 못먹게 부패시켜버린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예로 유기농 밀(무농약)은 발효가 되지만 똥냄새가 나는데, 자연재배 밀(무농약,무비료)은 시큼 달달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전문가들의 의견이 궁금함..)

이런 부패와 발효를 결정짓는 효모인 천연균과 이스트의 차이점 3가지(p.120-122)가 생각해볼만하다.

1) 자라나는 환경

천연효모의 발효는 무수히 많고 다양한 균들이 서로 경쟁하고 공생하는 관계에서 작용하는데,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스스로 확보해야 하고 환경을 극복해야 하기에 생명력을 갖지만, 배양균은 온실속 화초처럼 경쟁할 다른 균도 없고 살기 위해 얻어야 할 영양분을 풍족히 공급 받기에 생명력이 약하다.

2) 다양성

천연효모는 당분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발효의 경우 다종 다양한 균들이 혼합된다고 한다. 그결과 신맛, 감칠맛, 단맛등 다양한 맛을 내지만, 이스트는 특정 성질을 가진 효모만 증식되어서 당분을 이산화탄소와 알코올로 분해만 할뿐 그외의 일은 할수가 없다고 한다. 맛이 단일하다고 할수 있다.

3) 관리의 어려움

두번째 차이점에서 알수 있듯이 순수 배양균은 관리가 쉽다. 하지만, 천연균으로 발효시키는 것은 조건이나 재료가 마음에 안들면 썩혀버린다. 그래서 천연균으로 빵을 만들려면 그 균들의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닮았지만 다 달라서 매일 치열하게 생명력을 키워가는 우리 가정 일년전모습>


4. 좀 더 생각해보기 - 맛있는 함께하는 삶.

나는 이런 차이들 때문에 천연균으로 만든 빵이 다양한 맛을 내고, 이스트로 만든 빵보다 건강한 먹거리라는데 동의가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이런 모습이면 좋겠고, 우리 가정, 우리 교회가 이런 모습이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샬롬복음에 대해서 말할때, 공동체(함께하는 삶)에 대해 말할때, 나 다운 모습이 충분히 서로에게 드러나고 이것이 조화되는 가운데 하나되는 것을 강조한 것과 동일한 맥락의 말이다.

여기서, 환경의 차이에 대해서 약육강식의 환경에 내버려둬야 한다고 오해하진 않았음 한다. 적절한 교육과 돌봄은 각자의 은사가 드러나고 자기 효용감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저자의 글에 눈길이 간 이유는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강한 생명력을 낼수 있다'는 점이다. 이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좋은 환경을 꿈꾼다. 그 안에서 살고 싶어하고, 그렇게 살게 해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자수성가한 1세대를 이어가는 자손이 드문 이유는 환경 탓이 아닐까? 우리는 도무지 우리 스스로 그런 환경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한다. 대학을 나온 뒤에야 진로를 고민하는 웃픈 현실과 다양한 포비아들은 우리의 염려의 단편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스스로 정체성을 가진 이라면 그 하나님이 내게 주신 숙명같은 소명(나만의 독특성 speciality)을 신뢰하고 더 몸부림칠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말이다.

나는 아직 다루마리 빵집에 가보지 못했다. 그 빵을 직접 먹어보지도 못했다. 글로만 읽고 맛을 상상하며 만족했다. 하지만 내가 주변에서 흔히 구하는 빵은 모두 이스트로 발효시킨다. 그나마 동네 빵집에서 볼수 있는 천연효모 빵도 어쩌면, 저자가 귀뜸해주는 진짜 천연이 아닌, 보통 이스트보다 다양한 균들이 함께 배양된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은 모든 기준들을 다 내려놓자는 주장이 이상적인 안일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자꾸만 꿈꿔진다. 관리가 어렵겠다 싶고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믿음의 선배들이 한 시대에 크고 작은 은혜들을 맛보았던것처럼 나도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다. 

모두가 똑같은 환경에서 효율적인 삶을 살아가는게 안전하고 편리할수 있지만, 맛이 없을 것 같긴하다. 맛이 안난다는게 아니라 질리도록 한가지 맛만 낼것 같다는 말이다. 

수학 문제집을 풀며 짜증내는 첫째 녀석을 붙들고, 네가 해야만 하는 일이 많겠지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짜증내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로 듣는건 아닌지 노파심이 더해가지만... 하나님이 주신 자연안에서 사람과 그 은사를 소중히 존중하며 다루마리 빵을 아들과 먹고 싶다. 

물론, 아내와 다른 두 아들과 그리고 친구들과도 맛있게 먹고 싶다.(배부르게는 비싸서 못먹겠지만...^^)


한국에서 가볼만한 빵집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