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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복음으로 보는 영화 감상

태어나길 잘했어~ (일주일간 친구(2017) 영화를 보고)

by 샬롬보금자리 2019. 3. 25.

오랫만에 영화를 보았습니다. 일본고교생들의 사랑이야기이면서도 기억상실증에 걸려 친구를 잊어버리는 주인공에게 다시 찾아와서 친구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고교생 사춘기 시절의 향수는 없었지만 ㅠ.ㅠ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구석이 있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1. 줄거리 요약

주인공인 여고생 후지미야는 친구에 대한 기억을 일주일만 할수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이면 지난주에 있었던 모든 일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후지미야는 친구가 없습니다. 친구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자신이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친구를 사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후지미야에게 호감을 가진 남학생 호세는 매주 친구 신청을 합니다. 

 

2. 기억상실증이 문제다.

여주인공 후지미야는 남주인공 호세와 눈빛을 주고 받고, 서로 호감을 느끼는 경험을 합니다. 하지만, 후지미야는 월요일이 되면 언제나 다시 낯설음으로 긴장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녀를 보며 당황해하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오늘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자꾸 반복되는 후지미야의 낯선 긴장과 이에 당황해하는 호세의 모습은 마치 일주일마다 친구를 만나는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모임을 이루며 말씀에 은혜를 받고, 삶과 소감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마음에 위로와 결단을 새기기도 하지만, 다시 월요일이면..  세상의 가치에 맞추어 말과 행동에 담긴 생각을 바꾸는 것이 반복되는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 호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고민을 붙들고 씨름하다가 문학수업시간에 힌트를 얻어 교환일기를 함께 써보자고 제안합니다. 일기를 통해 지난 기억들을 떠올리며 월요일이 되어서 서로를 알아볼수 있게 하자는 생각입니다. 1990년대에 이런 연예를 하는 친구들을 보기도 했지만 경험은 없었고, 그저 내 기억속에는 대학시절 쓰던 소감노트 같기도 하고, 이전에 써놓은 설교문이나 기도문을 다시 읽을때 느껴던 '내가 쓴건 맞는데 내 글이 낯설었던 느낌'이 떠올랐습니다.(신기, 설렘이런..?) 

 

좀 더 나아간다면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들과 나눈 대화들과 있었던 일을 기록한 성경이 교환 노트이고, 그 노트를 지금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보는 것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후지미야의 또 다른 친구는 호세가 후지미야와 사귀는 이런 친구관계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진정한 친구가 아냐" 


나쁜자식..네가 친구를 알아??!. 

 그렇다면 진정한 친구는 무엇일까요? 

 

 

 

3. 진정한 친구는 무엇인가?

 

진정한 친구는 일기가 없어도 기억을 하는 관계여야 할까요? 그럴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래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 기준으로보면 영화속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후지미야는 친구가 없을수 밖에 없는 초반의 상황이 정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지미야의 어머니는 다시 자기 딸을 찾아와서 친구가 되자고 청하며 교환일기를 건네는 호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건 친구 밖에 없어"

 

 

이 말은 일전에  교회 목사님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기도에 대한 설교시간에 들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친구를 통해서 변한다"라는 언급이었는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인줄 모르고 환대하며 친구처럼 대하자,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친구처럼 대하시며 자신이 하려는 것을 숨기지 않으셨다(창 18:17)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모세와 이야기 하실때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 함 같이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출33:11)

진정한 친구는 서로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환대의 자세로 사귀는게 자연스럽습니다. 서로를 보며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서로를 보며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도 자신의 기억상실증 때문에 괴로워하며 친구에게 미안해 하는 여주인공 후지미야에게 호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넌 혼자가 아니야.. 걱정하지마.."

 

걱정하는 것을 부인하거나 내가 함께 있는 것을 못믿느냐고 채근하는게 아니라, 네가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너를 오해하거나 떠나지 않고 함께 있을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아마 그런 진정한 공동체야 말로 좋은 친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가정도, 신약에 나오는 교회도 함께 있어주라고 하나님의 섭리로 하나되게 한 공동체인것처럼 말이죠. 

 

이는 또한 구원자로 예고된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알려주셨고, 부활한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대위임령(마28:19-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을 말씀하신 것도 우리와 진정한 친구로 예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4. 진정한 친구를 사귈때 얻는 행복, 샬롬?

영화속 주인공들은 기억상실증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억할수 있는 순간인 지금에 충실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지금의 감정을 놓쳐버리지 않도록 소중하게 여깁니다. 고교생이 주인공인 영화답게 직접 고백하지는 않지만, 여주인공 후지미야가 이 관계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호세는 너무 신나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역시 태어나길 잘했어"

 

 

 

'이번 생은 망했다', '헬조선'이다는 비명어린 절규가 익숙해진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대사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행복감이 물씬 풍기는 이 장면이 참 좋았습니다. 내가 아끼는 친구가 나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살맛나게 하는 소중한 순간인 것을 새삼 공감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만났던 감격의 순간에 쏟았던 감격의 눈물과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던 그 기쁨의 순간도 그려집니다. 좋은 친구가 있으면 세상이 살만한 정도가 아니라 태어나길 잘했다는 말을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후지미야는 매주 기억을 잊어버리는데, 교환일기를 정독하며 자신의 기억을 되살리고, 다시 그 순간들을 헤아립니다. 그래서 지금 뚜렷한 기억으로 사실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교환일기에 쓰여진 말들을 사실로 믿고 받아들임으로 마음에 자리 잡은 소중한 기억을 느낍니다. 이전에 읽은 책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들도 좋은 요양보호사들과 있으면 상냥하지만, 기억하지 못한다고 함부로 대하는 시설에서는 머무는 치매 환자들도 신경질적이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괜찮다고 위로할 친구가 되기가 망설여지고, 그런 친구가 필요하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면, 우리에게도 이런 교환일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5. 우리는 어떻게 살까?

애초에 후지미야와 호세의 담임 선생님은 둘의 관계를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는게 좋겠다고 했었죠. 후지미야의 부모도 의사의 조언을 따라 친구들을 사귀지 않는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후지미야를 좋아하는 호세는 매주 월요일마다 친구가 되겠다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 행동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는데, 기억상실증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후지미야와 호세의 삶 모두가 좀더 행복해지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도 어쩔수 없는 한계를 마주할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이 평생에 한두번쯤 있다면 낭만으로 여길만도 하지만, 한해 한해가 갈수록 산너머 산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무거운 삶을 살때가 더 빈번해집니다. 호세처럼 사랑에 이끌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헌신할수 있으면 좋겠고, 그게 아니더라도 나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착한 일을 눈여겨보고, 하나님께서 이루시리라는 확신으로 작은 한걸음을 내딛어도  좋을것 같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1:6)

 

 

이 영화의 마지막에는 후지미야가 처음으로 호세에게 먼저 친구가 되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자신이 바뀌고 싶다고 바뀔수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변화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되새기고 용기를 내어 손을 내미는 거죠. 후지미야의 이런 모습이야말로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매주 월요일이면 세상으로 돌아가서 모든 은혜를 잊은듯이 살아가는 우리가 할수 있는 전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에게 먼저 찾아와서 손내밀며 친구 신청해주시는 주님에게 우리가 먼저 친구 신청을 해보면 어떨까요? 후지미야처럼 예쁘지만 자꾸만 주님의 사랑과 친구되심을 잊어버리는 우리도 하나님이 써주신 교환일기(성경?)를 읽으며 기억을 새롭게 하고, 소중한 기억을 마음에 쌓아가면서 말이죠. 예수님과 진정한 친구 관계가 될때 그 안에서 싹트는 샬롬으로서의 행복과 소중함을 가꾸는 예수님의 친구로 함께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제부터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주인의 일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모두 알려 주었으니 친구라고 부르는 것이다. (요15:15, 우리말성경)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