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상황이란 잡지에서 백소영 교수가 쓴 글"4차 산업혁명 시대, '4세대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읽고 그 내용이 함께하는 삶(공동체)의 논의에 중요한 재료가 될만하기에 요약 및 첨언을 남깁니다. (출처: 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06)
1. 지금까지의 그리스도인, 미래의 그리스도인
백소영교수는 그리스도인을 1세대부터 4세대까지로 나누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세대 그리스도인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이다. 이들은 주님의 재림과 임박한 종말을 믿었기에 악한 세상 권세가 우리를 핍박하고 죽여도 우리 영혼은 하나님 나라에 거한다는 말로 ‘영혼구원’을 중요시여겼다. 교회 안에서는 주인과 노예, 남편과 아내가 동등한 하나님 나라였지만 세상의 구조를 바꾸려고 하지는 않았다.
2세대 그리스도인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 주류가 된 그리스도인이다. 이들은 신앙을 가지고 박해가 아닌 권력을 갖게 되었다. 권력으로 타락하는 이들과 이를 경계하며 금욕적인 삶의 추구가 나타났다.
3세대 그리스도인은 개신교도들이다. 신분제와 가산제(확대가족 단위로 재산이 대물림되던 제도)로 유지되던 중세 사회가 붕괴되고 근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개신교도들이 윤곽을 드러냈다. 루터는 신자들이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가르쳤고, 칼뱅은 ‘소명’으로 자기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다고 했다. 3세대 그리스도인은 막스 베버가 “이 세상적 금욕주의”라고 부른 윤리적인 삶을 추구했다. 세상에서 세속적인 일을 하면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삶은 무척 어려운 것이었다. 백교수는 한국교회 ‘기성세대’가 여기에 속한다고 보았다.
4세대 그리스도인은 미래의 그리스도인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 이후로 기존에 중요시되던 기능 및 지성 중심의 인간 가치가 하락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특징인 주체성, 관계성, 창조성이 진가를 발휘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 특징들은 진정한 공동체 안에서 배울수 있는 것이기에 교회가 서로를 건설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2. 3세대 그리스도인과 근현대 사회
백교수는 3세대에서 오늘날의 사회현상과 미래적 전망으로서의 4세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제시하기 위해 '결혼과 사랑, 자기 중심성'을 다룬다.
백교수는 3세대 그리스도인이 살아가고 있는 근현대 사회의 초기와 중기 동안 3세대 가정과 교회는 근현대적 ‘칸막이화’ (compartmentalization) 를 신앙적으로 해석했다. 일터와 가정에서 성별에 따른 역할을 구분하고 그 긍정적인 조화를 제시한 것으로, 아버지는 직장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고, 어머니는 알뜰하게 가계를 운영하며 내조와 양육을 담당하는 형태를 바람직한 신앙의 삶의 모형으로 여겼다.
하지만 3세대 후기에 들어서자 가정이라는 공동체적 작동 방식(결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제위기가 계기가 되어 일하는 남편, 내조하는 아내의 배치가 더 이상 당연시 되지 않게 되었고, 더불어서 이를 정당화 하는 윤리관도 변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결혼과 출산에 대한 당위성이 의심받고 있으며, 동시에 이 시대의 청년들은 탈성적 전문가 개인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성별 구분이 없는 세상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기존 세대를 살아오던 시각으로 여자를 돕는 배필로 규정하고 남성이 감당하는 하나님의 일을 여성이 일방적으로 돕고 지원해야 한다는 말은 이 시대에 그리 설득력있는 말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백교수의 주장 중에 흥미로운 점은 “3세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결혼을 필수 요건으로 제시했다”는 내용이다. 1세대는 가능하다면 결혼하지 말라고 했고, 2세대는 안하는 것이 훨씬 더 경건한 선택이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성경이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삶의 원칙은 공동체로 사는 것이지, 결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엘리야나 엘리사, 바울, 심지어 에수님도 모두 결혼하지 않았지만, 모두 공동체로 살았다고 한다.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고 본질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혼을 후기 사회의 강조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조심스럽다. (나는 결혼은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그 본질적 특성으로 공유하는 나와 타인의 조화로운 하나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속성은 백교수가 언급한 공동체적 삶이 하나님 나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과도 연관있는 내용이다. 이 공동체적 본질이 신약이후 교회에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한 몸을 이루는 다양한 지체로서의 성도,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으며, 내 뼈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는 서로 사랑의 관계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교수가 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 시대가 결혼만이 아니라 공동체 자체를 잃어가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 돌보고자 하는게 아닌가 싶다.
백교수는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21세기적 사랑으로 지적한 ‘합류적 사랑’(confluent love)을 인용하여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결혼관(결혼하는 것이 당연하고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계속 함께 가야 하는 20세기 낭만적 사랑)과는 사회학적으로 구별되는 시대가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근현대 후기에는 전문가요 경쟁적 개인이 되는 훈련을 수행하고 있기에 결혼을 제도적으로 유리하게 여기고 있지 않으며, 그렇기에 결혼을 전제하기 보다는 이별을 전제하고, 자녀양육이나 부모 봉양이라는 의무가 없는 함께 하는 동안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매력적인 경쟁력은 ‘섹시한’ 외모이고, 사랑은 ‘성관계’로 한정된다. 젊은이들은 제도가 부추기는대로 사랑을 배우고 있을 뿐이다. 공동체로서 사랑을 해본 경험이 없고 그런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백교수가 제시하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서의 사랑은 ‘기꺼이 나의 경계를 초월하여 나의 시간과 에너지와 존재를 너에게 내어 주려는 마음과 행동’이다. 이 시대의 사랑은 합류적 사랑의 기간이나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나’ 라는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 결혼, 출산, 육아와 연결되지 않는 사랑, 오직 나의 육적 감각과 정서적 만족을 채우는 동안만 합류하는 계산적 사랑이 상대가 이성일 필요도 없고, 하나일 필요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서 백소영 교수가 전망하는 미래의 그리스도인, 4세대 그리스도인은 4차산업혁명과 관계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을 배경으로 ‘생각하는 기계’의 시대를 열 것이며, 이런 시대에는 지금까지 해오던 지성추구를 가지고는 인간의 효용성에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경줄 잡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중요한 능력이지만 후기 근대 사회가 잃어가는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성, 관계성, 창조성은 시대나 제도와는 무관하게 불변하는 인간 고유의 특성이며, 하나님 형상을 지닌 인간의 가장 핵심적 능력이라는 것이다.
3. 하나님의 형상회복을 위한 공동체가 미래의 방향이다.
백교수의 글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특징으로 언급한 주체성, 관계성, 창조성이다. 이것들은 근현대사회에서 발전한 제도 안에서 지식전달을 통해 얻을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실제 삶으로 부딪치며 경험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가 받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를 진심으로 마주보면서 만나는 가운데 내 의미와 너의 의미가 부대끼고 갈등하고 좌절하고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전인격적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이는 샬롬복음에서 말하는 진정한 공동체 경험과 유사하다)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서로를 건설하기 위한 관계적 사고를 하고, 공동체로 살아가는 방법과 새로운 제도를 짜내기 위한 창조적 사고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4차 산업혁명이 재편하는 세상에서는 이 능력이 제일 필요한 인간의 능력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주체성과 관계성, 창조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백교수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이 성장하는 모체로서 공동체를 제시하기 위해 바탕에 깔고 있는 성경의 핵심윤리는 ‘살아라’(존재명령)와 ‘살려라’(구원명령)이다.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생명을 그대로 잘 살아내고, 혼자만 잘사는게 아니라 더 연약한 생명을 살려내라는 것이다. (더 연약한 생명을 살린다는 말은 조심스럽다. 여전히 능력있는 자가 은혜를 베푸는 권력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높거나 낮은 사람이 아닌 그저 나 아닌 타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나와 너의 조화로운 연합이 그 핵심적 명령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세상에서는 점점 더 맣은 사람들이 버려질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적어도 이 땅의 교회들은 버려진 사람들이 뛰어 들어올 수 있는 공동체, 물리적 생명도 인간으로서의 자존감도 살아나는 그런 '생존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가득해서 서로의 재능을 발견해주고 격려함으로써, 스스로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로 살아갈 뿐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로 자라나는 그런 센터가 되면 좋겠다.
4. 평가
백교수는 글로 만난 탁월한 학자이다. 이미 여러 지인들로부터 추천을 받았음에도 직접 만날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요근래 다양한 경로로 글을 읽게 되면서 흥미가 생겼다. 내가 공동체를 이야기 할때, 하나님의 형상을 이야기 할때 백소영 교수를 소개해주는 이유가 오늘 글에 다 포함 되어 있다.
백교수의 이 글에는 역사 속의 그리스도인을 간략히 구분할 경계를 세워준다. 그 시대마다 추구하던 신앙의 색채를 알아볼수 있어서 유익했다. 더불어서 3세대 그리스도인이 살고 있는 오늘날의 근현대적 칸막이화(compartilization)의 한계도 명확하게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인간이 살아갈 미래, 그 미래의 그리스도인이 주목해야 할 인간됨을 하나님의 형상에서 착안하고 그 본질적인 인간다운 삶을 꽃피울수 있는 바탕으로 다시 교회 공동체를 주목하게 한 것은 적절하게 여겨진다.
샬롬복음에서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faithful realationship)에서 비롯되는 샬롬인데, 이를 잘 설명해줄수 있는 좋은 글을 만나서 반갑고 즐겁다.
첨언: 이렇게 좋은 글을 실을 수 있는 바탕이 된 복음과 상황을 정기구독해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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