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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모음/함께하는 삶 이야기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

by 샬롬보금자리 2020. 5. 26.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Bible study is...)

 

1. 왜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가?

  내 삶을 풍성하게 살기 위해서, 내가 믿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갓난아기 때부터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삶을 채워가지만, 그 와중에 배워야겠다는 의지를 갖기 훨씬 이전부터 보호자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웁니다. 말하기, 걷기, 먹고 싸는 법, 몸을 사용하는 법,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모국어를 비롯해 몇개국어를 배우기도 합니다. 우리는 배울뿐만 아니라 가르치기도 잘합니다. 세살짜리 형이 한살짜리 아이에게 까꿍하며 얼굴을 내밀면서 까르르 웃는 법을 가르치고, 어떤 장난감이 유행하는지를 복음처럼 전합니다. 이런 가르침과 배움을 통해 우리는 생존의 기술을 넘어선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사회적으로도 평생학습을 장려하며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이미 수천년 기독교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전통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성경책을 쉽게 구할수도 없었고 학교에서 나름의 전문성과 체계를 갖추고 성경에 대해 배울수 있는 것도 희귀한 시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선조들은 구전으로 혹은 설교를 듣고 말씀대로 살았고,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듣고 누리며 전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때마다 등장하는 이단들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레 정경이라고 불리우는 성경이 등장했고, 그 성경의 해석을 둘러싼 다툼을 지나면서 자연스레 변증법이 발달 했습니다. 성경을 대하는 방식, 성경의 해석에 따라 교리가 달라졌고 교파가 생겨났습니다. 

  2018년 기준으로 전세계 기독교인구는 약 25억으로 전세계 인구의 32-34%를 차지하는데, 이중에 대략 절반은 카톨릭이고, 개신교는 오순절-정교회-성공회-침례교- 루터교회-복음주의-감리교-아프리칸-회중교회-장로교회 순입니다. 한국에서는 장로교가 보편화되었지만 감리, 성결, 침례 교단, 독립교단이 거의 특별한 차이를 나타내지 않고 한국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인 대부분은 어려서부터 다닌 교회, 혹은 집 근처에 있는 교회, 친구가 초대한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주로 여름성경학교나 수련회, 부흥회나 연합에배(부활, 성탄)를 통해 예수를 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는 것, 예수 믿고 문제가 해결되고 복을 받는 삶, 내세에 대한 소망으로 천국을 접했었습니다. 일부는 대학 안밖에서 선교단체를 통해 성경을 배우고, 기도와 전도훈련을 받았는데, 그 뒤로 복음주의라고 부르는 성경해석이 제시되었고, 예수님의 고난과 이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가 누구인지를 설명해주며, 자연스레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안내합니다. 카톨릭은 교회(교황)의 권위 아래 그 해석을 하나로 통일하려고 하지만, 개신교는 성경의 권위를 교회보다 더 높이 둠으로 성경을 직접 읽고 해석함으로 인해 다양한 해석이 허용됩니다. 이는 우리가 좀더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면서 그 실상을 더 보게 되겠지만, 이런 다양한 해석은 다양한 사람들이 처한 다양한 상황들에 의미있게 적용되며 실제적으로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성령하나님의 역사를 이룹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성경해석은 많은 논쟁을 낳으며 무엇이 더 옳은가를 두고 지금까지도 치열하게 다투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베뢰아 사람들처럼 말씀이 정말 그러한가 상고하는 모습을 계승하여 말씀에 참으로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된 성경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을 우리 삶에 적용하여 그 온전한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배우고 가르치는 것중에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그 어느것에 뒤지지 않는 중요성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은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인생으로 입증한 바입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교파적 상황을 볼때도 우리가 믿는 성경이 어떤 내용인가를 아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기위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마땅히 붙들어야 할 태도입니다.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 변증을 위해 우리에게 허락된 성경을 직접 맛보아야 합니다.

 

2. 성경공부란 무엇인가?

  성경공부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을 함께 혹은 홀로 살아가는 모습을 헤아리게 하는 지도이자 에너지를 발견하고 체득하는 것입니다. 

  성경공부는 성경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을 읽는 독서, 성경을 암송하는 것과 묵상하는 것을 포함해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 성경이 말하는 바를 실제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주목하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안다'는 것은 지식적인 앎을 넘어서는 추구하는 공부를 의미합니다. 이는 복음으로 사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 전 세대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충분한 삶의 의미를 제공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식화된 복음이 사변화되고 오히려 사람이나 삶에 딱지를 붙이고 옳다 그르다를 평가하는 율법의 기능으로 급격히 쇄락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설명해줄 체계화된 설명을 원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급격히 표류하며 위협당하는 삶에서 복음이 주는 샬롬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복음으로 사는 삶을 사는 것은 석가가 스스로 깨우친 것처럼 혼자서 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에 간혹 탁월함을 가진 위인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 아니 가장 진실하게 성찰할수 있는 나 자신을 보면 한계는 매우 뚜렷합니다. 적당히 착한 자로 매주 회개를 거듭하며 이 악한 세상에서 어쩔수 없음 앞에 타협을 하든지, 좀더 완고한 도덕주의자가 되어 나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한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으로 세분이신 것처럼,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만들고 그를 돕는 배필을 만든 것처럼 복음이 삶에 자리 잡을 때는 필연적으로 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사랑에 관한 것, 기쁨에 대한 것, 평화에 대한 것이 됩니다. 타자이신 하나님께서 계시로 찾아와 말을 거시고, 복있는 자로 부르시고, 지키시고 명령하심으로 복음으로 사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자가 하나님을 아직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하나님이 은혜로 긍휼을 베푸시는 줄을 알도록 전하고 가르치고, 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하는 일을 통해 복음으로 사는 삶의 실제를 누리게 됩니다. 성경을 알아가면서 하나님을 믿는 자가 도덕적 흠결없는 자가 되고, 완벽한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하지만 어느 특정한 상태가 완성이 되어 복음이 되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의 어떠함이 아닌 하나님의 어떠함에 근거하여 서로가 서로를 대면하며 관계 맺는 것이 복음으로 사는 삶을 시작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됩니다. 

  이렇게 성경을 알아가면서 복음으로 사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함께하는 삶의 양상을 띄지만, 그 시작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결국은 혼자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에 대해서도 의존적인 태도를 극복하고, 결국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삶을 내 삶으로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직접 알지 못할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뜻을 고민하지만, 이를 애정으로 경청하고 그러한가 고민하고 검토한 뒤에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근거는 내가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이라는 사실을 들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나 같은 이가 없습니다. 내가 어떤 면에 탁월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나로 지으셨기에 나는 나로 살아야 합니다. 두렵게도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우쭐하며 하나님을 없다 하는 어리석은 교만으로 실족하든지,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 삼으려는 우상숭배로 우리를 미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님 다움을 보이려는 듯이 우리를 이런 삶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함으로 자연스레 터져나오는 기도와 사랑어린 순종으로 살 길을 허락해주셨습니다.

 

3. 성경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우리의 삶을 잘 살기 위해서, 풍성한 삶, 복음으로 사는 삶을 살기 위해서 성경을 공부한다고 했는데, 그 성경을 대하는 전제가 있습니다. 이는 신학용어로 하나님에 대해 공부한다는 신학의 전제가 되는 것이 주요한 참고가 될수 있습니다. 그것은 크게 3가지 입니다. 신학은 성경을 가지고 하고, 믿음으로 하며, 계시에 근거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만질수도 없고 관찰할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초월적이고 우리와는 다른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그 초월에서 우리의 일상으로 뚫고 들어와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객관화 되었습니다. 성경안에서 삼위 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통해 인격적으로 인간을 대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비록 우리가 기도로 찬양으로 무언가 황활경을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것들을 검증하고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통일성, 연속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려는 어떤 시도든 성경에 기초해야 합니다. 

  하지만, 신학을 할때 우리가 마주하는 본문들은 우리가 세상에서 배운 지식으로 설명할수 없는 경우들을 제공합니다. 단순히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신적인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성경을 가지고 신학을 하는 내용의 신빙성을 결정짓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인간으로 태어나신 일,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일을 비롯한 많은 본문들을 대할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을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덮어놓고 믿는다는 말과는 다른 것입니다. 수학에서 몇개의 공리를 취하고 그 뒤에 그 전제들 속에서 나머지 수학을 따져 연구하는 것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스스로 권위를 취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권위를 부여받기에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성경을 대하자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딤후 3:16).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지만 그들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것이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에서 기인하는 계시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이 주신 계시로 이루어졌다면, 이 성경을 읽고 질문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다양한 연구 방법론들을 적용하며 성경을 이리저리 연구할테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셔야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바로 보고, 우리 삶에 생명을 주는 복음을 바르게 알수 있습니다.

성경을 대하는 방법론에 따른 분류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은 대략 4가지 정도입니다. 설교, 강의, 소그룹 성경공부, 일대일 성경공부입니다. 설교나 강의는 주로 대그룹의 형태를 취하고, 전달 방법에 있어서도 한 사람이 여럿에게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소그룹이나 일대일로 이뤄지는 성경공부는 그 숫자가 비교적 작고, 발언 역시 쌍방향으로 자유로운 면을 갖습니다.

(1) 설교

  설교는 신자들이 접하는 가장 보편적인 성경공부 방법입니다. 설교는 주로 구약의 선지자의 모델에서 선포의 의미를 기초로 합니다. 그래서 설교는 기본적으로 선포하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여기서 설교자의 역량과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취하게 됩니다. 이런 설교를 통해 성경을 배우는 것은 장점이 있습니다. 한명이 여럿의 회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수 있습니다. 이는 회중의 공동경험의 기회가 되고, 개인대 개인의 관계를 벗어나서 "우리" 정체성을 갖게 되는 기초가됩니다. 실제로 탁월한 설교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켜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하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설교는 기본적으로 한방향 소통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청중으로 하여금 수동적인 경향을 갖게 하고, 마음의 감동이나 감정적 변화를 은혜의 지표로 환산하는 태도에 머물게 해서, 더이상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한계를 갖습니다. 특히 요즘 온라인 예배나, 방송설교는 이런 환경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고, 우리 정체성이 없는 개인화된 예배, 말씀으로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기대로 성경에 대한 깊은 수용보다는 설교를 소비하는 형태로 표류하게 할수 있습니다. 

(2) 강의

  강의는 주로 신학교에서 주로 행해지는 형태입니다. 교회에서도 다양한 주제로 강의를 통해서 성경을 가르쳐줍니다. 예를 들어, 성경을 관통하는 주제를 설명하는 성경 맥잡기, 성경 통독 세미나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강의 형태는 지식을 전달하고 체계를 잡도록 해주는데 효과적입니다. 설교처럼 한명이 회중에게 동시에 전달하는 것과 동일한 효율성을 갖습니다. 하지만 설교와 마찬가지로 한방향 소통의 한계를 갖습니다. 특히 강의는 설교보다 더 지식 전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인류는 역사 가운데 합리주의 세대를 지나오며 그 지식의 유산을 바탕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효과적인 지식전달은 중요하며 유용합니다. 하지만 결국 복음은 짓기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생각할때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 것은 분명합니다. SKY 엘리트만의 복음이 아니라 온 세상의 복음이라는 점을 생각할때, 교파나 신학사조, 학문적 접근은 일상에서 복음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려움이 될수 있습니다. 

  이런 설교나 강의는 대체로 결론을 정해두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공유하는 과정은 연역적 혹은 귀납적 방법 모두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로 설교자나 강사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회중에게 한방향으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설교나 강의 이후에 설교자 혹은 강사에게 질의를 하며 쌍방향 소통의 기회를 주는 것이 유용할 수 있습니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소그룹 모임(혹은 가정에서) 들은 내용에 대한 소감을 나누며 각자가 느낀 점, 궁금한 점을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3) 소그룹 성경공부(Group Bible Study)

  소그룹 성경공부는 한때 건강한 교회, 선교단체에서 사용되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조명받던 성경공부 방법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15명까지도 소그룹으로 보기도 하지만 실제로 원할한 소통과 대화를 위해서는 8명이내(6명 정도)가 적절합니다. 그 이상의 경우에는 인도자 중심의 설교, 강의 형태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소그룹 성경공부 문제집을 사용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주요 화자가 1-2인으로 제한되는 경우에 해당하고 이는 소그룹 강의로 분류해야 합니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소그룹 성경공부의 핵심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성경을 공부한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모르는 성경지식은 인도자나 헬퍼가 설명을 제공하되, 그 말씀에 대한 새헉과 적용의 기회를 다양한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갖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리더는 자유롭고 안전한 분위기를 유도하고, 다양한 사람에게 골고루 발언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소그룹 성경공부는 한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들을수 있다는 장점을 갖습니다.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단편적인 맞다 틀리다는 이해를 넘어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게 되고, 설교나 강의에서 주는 외부적 가르침과는 다른 내면적 수용을 보다 쉽게 합니다. 그 외에도 성경을 기초로 한 실제적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복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실제를 경험할수 있게 해줍니다. 그 안에는 관계의 역동이 발생하며, 사회가 가지는 갈등과 침묵, 수용과 사랑이 고스란히 발생합니다. 이는 복음으로 사는 삶의 실제를 연습하고 배울수 있는 안전한 좋은 환경이 됩니다. 하지만 역으로 소그룹원들과의 관계가 의사표현의 내용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단점을 가집니다. 이는 대그룹에서의 침묵, 일대일 관계에서의 안전 사이에서 형성되는 한계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소그룹 모임이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도자적 자세에 기초한다는 점을 충분히 공감해야 하며, 리더와 헬퍼가 자유로움과 안전함을 이해하고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지만 각자에 맞는 활동의 역할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일대일 성경공부 (1:1 성경공부)

  일대일 성경공부는 일부 선교단체에서 시작한 방법인데 교회로도 확산되어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일대일로 만나서 성경을 함께 공부하는 방식입니다. 이 성경공부 방법의 장점은 성경 진리를 깊이있고 적절하게 전달할수 있다는 점입니다. 배우는 자의 수준에 맞는 공부가 가능하고, 진도와 내용의 깊이의 조절이 자유롭습니다. 또한 복음의 주요한 특징인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일대일 관계라는 것이 신뢰와 안전을 형성하기에 전적인 수용과 지지, 돌봄을 통한 회복과 성장의 촉매가 될수 있습니다. 이는 배우는 시기를 지나서 후에 다시 가르치는 자가 되면서 사랑을 베푸는 자로 온전한 성장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일대일의 관계가 갖는 위험성도 고스란히 갖게 됩니다. 부득이 관계에 있어서 가르치는 자가 권위를 갖게 되는데 이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가르치는에게 의존적이 될수 있습니다. 이는 교회의 사유화를 비롯해서 종속관계에서 비롯한 다양한 문제의 뿌리가 될수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며 하나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성경을 배우기만 하지 않고, 배운 것을 가르치는 것을 통해 사랑을 베푸는 자로 선한 관계를 계승해 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소그룹이나 일대일 성경공부는 주로 열린 결론의 형태를 취합니다. 같은 본문이라도 함께 공부하는 구성원에 따라 다른 해석, 다른 적용이 나올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더욱 빛을 발휘하는 방법입니다. *이는 그룹원의 숫자에 의한 기계적인 분류가 아닙니다. 소그룹이나 일대일로도 얼마든지 닫힌 결론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활용할수도 있습니다. 

 

4. 성경공부를 하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성경을 안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과 연관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고, 내 삶, 타인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일어납니다.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할수 있는 길잡이와 원동력을 제공해주며, 물리적인 결과와는 다른 풍성한 삶을 살수 있게 됩니다. 특히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보다 더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을 익히게 됩니다. 마치 처음엔 서툴던 운동이 횟수를 반복할수록 보다 자연스럽게(의식하지 않고도 공을 넘기게 되는 것처럼) 몸이 반응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힘이 생기면, 그제서야 주체적인 성장이 자유로워집니다. 설교나 강의를 통해서 접하는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스스로 판단할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설교자 의존적이 아니라 설교자의 도움을 적절하게 받는 성숙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을 공부하고 난 뒤에 얻는 유익은 더 있습니다. 바로 가르치는 자, 복음전하는 자로 살수 있습니다. 물론 이미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전에도 우리가 경험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배우면 역으로 그런 배움이 필요한 이에게 가르쳐줄수 있다는 것은 분명 그 의미가 다릅니다. 누구나 요리를 할수 있지만, 요리 학원을 다니며 배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칠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거듭 주의를 요청하는 것은 지식전달자가 아니라 조력자로 함께 하나님을 알아가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3:7). 

  우리는 성경을 공부한 뒤에도, 계속해서 성경을 공부하는 중에도, 평생을 공부한다 해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배우려 하고, 알려고 하지만, 결코 다 배울수도 없고, 다 알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교만할수 없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다양한 신학사조 아래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성경을 통해 알고 믿고 신뢰하는 바가 무엇이든지, 내가 존경하는 이가 무엇을 말하든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주체적으로 (비판적으로 내 언어로) 수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다시 신학개론으로 제시한 3가지 원칙이 유용하게 사용될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신뢰할 수 있는 친구와 목회자, 신학자, 공동체 안에서 나와 다른 사람과 교류하며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참 행복인 것을 알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