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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모음/함께하는 삶 이야기

다른 곳, 다른 사람들, 다른 예배 : 교회 이야기

by 샬롬보금자리 2020. 3. 19.

이 글은 2020년 1월 8-30일까지 다녀온 여행을 기초로 작성한 글입니다. 

다른 곳, 다른 사람들, 다른 예배 : 교회 이야기

 

1.  들어가는 말: 주일은 잘 보내셨나요? 

  일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이 찾아옵니다. 일요일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쉼을 누리는 날(?)이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교회 가는 날입니다. 한동안은 기독교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사업체들이 "주일은 쉽니다"라는 안내문구를 걸어놓고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바쁘고 치열한 삶으로 치닫는 현대인들에게는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 날은 도리어 생계를 위해 돈을 벌기 좋은 날이 되었습니다. 안식과 충전의 시간은 줄어들고 못다 한 공부나 일을 보충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이 날의 정체가 헷갈렸습니다. 일요일을 맞이하면 체감상으로는 일주일의 마지막 같은데, 어떤 사람들은 이 날을 한 주의 첫 날, 주일로 소개합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이 헷갈리는 명제의 양쪽을 오락가락 했지만, 결국 저에게 일요일은 주일이 되었고, 교회 가는 날, 예배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나중에에 책이나 강좌를 통해 본래 유대인이 지키는 안식일은 토요일이었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주일이며, 안식후 첫날 모이던 것이 주일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일은 단순히 교회에서 하루를 보내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쉼과 회복을 누리는 안식일이며,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날이라고 알지만, 정작 어떻게 그런 주일을 보내야 하는지는 늘 고민입니다.

  목사가 된 뒤로 주일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졌습니다. 주일 낮예배를 대예배라 부르고 그 예배를 참석하는 것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일주일에 한번의 예배 마저도 늦게 오거나, 예배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뜨면서도 헌금을 하고 졸더라도 설교시간에 교회에 있으려고 애쓰시는 성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게 바쁘고 피곤하다면 그냥 하루 쉬시지.. 아니면 오후에 나오시든지.. 하는 안쓰러움과 얄미운 마음도 들었다가, 그래도 하나님 앞에 나와야 산다고 악착같이 예배에 참여하는 헌신의 자세가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편에서는 그 분들이 어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예배가 무엇이고 하나님이 주신 안식일, 혹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주일은 어떤 날로 보내야 할까요?!' 

출처: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교육진흥원

  여행 중에도 주일에는 머물던 영국과 네델란드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공간도 낯설고, 함께 예배 드리는 사람들도 다양했고, 예배 형식도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자연스레 주일과 예배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고 그 내용을 정리하고 소감을 나누고자 합니다. 

 

2. 브루더호프,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일상으로서의 예배

  먼저, 영국에 도착해서 처음 맞은 주일은 다벨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보냈습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이미 100년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는지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특정 교단에 속해 있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구지 구분을 하자면 재세례파 전통 아래에 있습니다. 재세례파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진정한 신앙고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다시 진정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어린이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상태에서 받는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침례교처럼 회중교회(목회자 중심이 아니라 성도들이 더 중심이 되는 형태)라는 점입니다. 

출처: 브루더호프홈페이지

 

예배, 시간과 사람 그리고 공간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그런 면에서 그들다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주일 오전 10시30분이면 예배가 시작되지만, 이미 15분 전부터 사람들은 모두 모여 있습니다. 외부인도 환영하지만, 주로 마을에 모여 함께사는 멤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갓난 아이와 그들을 돌보는 이들을 빼놓고는 어린아이부터 연로한 어르신까지 모두 모입니다. 말하자면 전세대 통합 예배입니다. 그들은 모일 때 둥글게 둘러 앉습니다. 어디가 앞인지 구분할 수 없고, 어떤 사람이 사회를 보며 주도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어떤 노래를 부를지, 어떤 성경 본문을 읽을지를 안내하고 참여하지만, 한국처럼 찬양을 인도하는 리더, 예배 순서를 알려주고 마이크를 독점하는 리더가 없습니다. 기도 역시 회중이 함께 기도하기도 하고 한 사람이 기도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공동체 전체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곳에 모여서 아름다운 노래를 몇 곡 부르고, 성경본문을 읽고, 몇몇 사람이 이야기를 하더나 예배가 30분만에 끝납니다. 그 이후에 소감 나눔이나 다른 활동을 기대했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흩어졌습니다.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점심 전후로 사람들은 혼자 혹은 여럿이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집에서 가족과 어울리며 화단을 가꾸거나 소풍을 간다고 합니다.

  내심 이들은 어떻게 예배를 드릴까 기대했는데, 예배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습니다. 더 이상 모임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뒤에 너무 허전하고 어색해서 저를 챙겨주던 호스트에게 이게 끝인지 물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무엇을 해야하냐고 반문했습니다. 한국에서 참여하던 예배와는 다른 예배, 너무나 다른 주일에 어색하고, 실제적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호스트가 이런 저의 반응을 알았는지, 바람을 쐬러 나가는 친구와 동행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일 저녁에는 이미 20년전에 브루더호프에 정착한 한국인 가정이 저와 아들을 초대해 주셔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카드놀이와  대화를 하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평범하지만 중요한 일상

  브루더호프에는 한국 교회에서 진행하는 성경공부나 훈련 프로그램이 없다고 합니다. 멤버가 되기 전에 목사와 함께 성경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유일한(?) 프로그램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삶을 보면 분명히 한국 성도들보다 성경을 무척 가까이합니다. 가정에서 식사를 하기 전, 식사를 한 후에 노래를 부르거나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이 아닌 다른 책을 읽기도 하는데 대체로 5분 내외로 짧은 글을 읽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너무 간단하지도 않고, 너무 부담되지도 않을 정도의 대화 시간이 있습니다. 검소하면서도 정성어린 식탁에서의 대화는 자연스러운 성경과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로 주의를 돌리고, 다시 함께하는 가족, 친구에게로 관심이 흘러갑니다.

함께사는 사람들의 일상 예배

  이런 공동체의 분위기가 익숙해지니 주일 예배의 특징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일상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함께하는 삶이 주일에도 동일하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주말에는 공장과 학교를 쉬지만, 이미 저녁 일과 후에 가족과 친구와 시간을 보내거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위해 홀로 시간을 보내던 모습이 주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살수 있는 환경은 이들만의 독특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들은 생계를 함께 책임지고, 모든 일상을 함께 보내기에 그런 리듬을 가질수 있겠다 싶습니다.

  주일이면 예배를 위해, 각 부서별 활동을 위해, 점심식사를 위해 목회자와 봉사자들이 다시 일(?)을 해야하는 한국교회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에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지금까지 보내던 주일과는 다른 톤의 안식과 사랑을 느낄수 있던 소중한 주일이었습니다. 일상을 주일처럼 주일을 일상처럼 하나님과 보내는 삶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3. 국제장로교회, 같지만 다른 예배

  영국에서 두번째로 맞이한 주일에는 선배목사의 소개로 국제장로교회(International Presbyterian Church) 소속인 Ealing 교회에 갔습니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생소한 교단인 국제장로교회(이후 IPC)는 라브리를 시작한 프란시스 쉐퍼가 세운 개혁주의 장로교회입니다. 첫 IPC 교회가 바로 이 교회(Ealing church)였고, 이후에 영국과 유럽, 한국에 IPC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영국노회(13개 교회)와 유럽노회(6개 교회), 한국어노회(9개 교회), 한국노회(4개 교회)의 네 개의 노회가 구성되어 있다: 출처:위키피디아) IPC는 스스로를 개혁주의, 복음주의 교회라고 소개하고 있고, 지역 사회에 기반하면서도 국제(international)적인 구성원들을 포용하려고 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한국에도 IPC 소속 목사와 교회들이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승장, 박득훈, 박대영 목사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모두 건강한 교회, 개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이기도 합니다.

Ealing church 앞 뜰에서

 

예배, 시간과 사람 그리고 공간

  Ealing 교회는 주일에는 2번의 예배가 있는데 아들과 함께 오전 11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머물던 숙소에서 1시간 30분정도 걸려서 지하철과 버스로 이동하고 다시 5분여를 걸어서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예배시작 30분 전즘에 도착했는데 10시에 있는 주일학교(어린이, 어른 양육 모임)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은 있었고, 예배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더 모여서 예배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구성원은 정말 international 답게 여러 아시안계, 라틴계, 유럽계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교회는 공원 앞에 위치해 있었고 건물은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단층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100명 남짓 사람들이 모일법한 커다란 예배 공간과 주방, 어린이들을 위한 방이 있었고 중앙에는 로비가 있었습니다. 출입구 쪽에는 화장실과 소그룹실, 사무실이 위치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화장실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공간은 아담한데 깔끔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어린이도 이용하기 쉽도록 배려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 외에도  건물 안쪽으로는 작은 정원이 있어서 예배실 옆으로 전면 유리창을 통해서 보이는 초록 생명체들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느낄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영국에 살던 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교회 안쪽에는 도로와 차단된 넓은 공간이 있어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마음껏 뛰놀수 있다고 합니다.

교회 바로 앞에 있는 공원

  예배실 안에는 나무 의자들이 두 그룹으로 정면을 향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첼로와 피아노 연주자들이 한켠에서 아름다운 찬송가 멜로디로 자연스레 예배에 마음을 집중할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주보는 A4 용지를 3장 겹쳐서 총 12페이지짜리 였는데, 그 안에는 모든 예배 순서(찬송, 기도, 교독문)와 교회 안내와 광고가 빼곡히 적혀있었습니다. 예배는 광고-예배로의 부름-찬양-기도-성경봉독-교독문(죄의 고백과 용서의 은혜에 대한 확신)-찬양-헌금기도-헌금(첼로연주)-찬양-설교-찬양-성찬-찬양-축도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찬양이 좀 많았고 일어서고 앉는 횟수가 많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낯설기는 했지만, 장로교 예배가 가지고 있는 예전(예배 형식)을 통해 감동있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실 안, 성찬이 준비되어 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설교였습니다. 사실, 이 교회를 가면서 내심 어떤 설교를 들을까 기대했습니다. 이 교회를 소개해준 분 때문이기도 했고, 예배 전에 잠깐 만난  목사에게서 풍기는 유쾌하고 진지한 면이 그 기대를 더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오전 예배는 다른 기관 사역을 소개하기 위해 외부 설교자가 설교를 했고, 그 내용은 환난 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사역에 동참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일을 하려는 건 알겠는데 본문이 짜맞춰져서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 설교, 검증할수 없는 체험들을 나열하는 설교가 주는 밋밋함과 공허함이 아쉬웠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성찬

  그래도 이 예배에서 참여해서 좋았던 점을 하나 꼽자면 성찬식이었습니다. 마침 방문한 주일에는 성찬식이 있었는데(모든 성도가 참여할수 있도록 2주마다 한번씩 오전, 오후를 번갈아 가며 성찬을 한다고 합니다) 성찬은 목사가 주관하지 않고 장로가 인도하고 장로와 집사, 사모로 구성된 성찬위원들이 진행했습니다. (아마 돌아가면서 하는 것 같습니다) 장로가 성경을 읽고 빵 한덩어리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여러개의 큰 잔에 담겨있는 포도주와 함께 성찬위원들에게 건네주어 회중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자리에 앉은 청중들은 성찬위원들로부터 빵 조각을 건네 받아서 직접 빵을 떼고, 한 줄씩 옆으로 잔을 넘기며 모두가 함께 마셨습니다. 이전에 선교훈련을 받으면서 앞으로 나가서 한 빵과 한 잔으로 하는 성찬을 경험했었는데, 그 때 못지 않은 낯설음과 한 몸됨의 의미를 실감하는 성찬이었습니다.(한 사람이 마실 때마다 닦긴 하는데 그래도 위생이 걱정되긴 했음)

낯설지만 편안하게 함께한 예배

  이 교회의 담임 목사인 Paul과도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는 흰색 와이셔츠에 넥타이만 메고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를 건냈고, 다른 사역자들도 자유로운 캐주얼 복장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인 사역자인 유키 전도사는 동양계 사람들을 챙겨주고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찾아와서 인사를 나누고 자신과 교회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예배 후에는 차와 쿠키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었고, 별도의 식사 없이 그렇게 모임을 마치고 나면, 저녁 6시에 다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예배여서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앞줄에 앉은 노부부와 여러 사역자들이 처음 온 방문객이 어색하지 않도록 잘 챙겨주었습니다.(근처의 맛있는 식당도 소개해주기도 했구요:)  

예배전에 도착해서 찍은 사진

  결코 짧지 않은 예배였음에도 장로교 예전이 가지고 있는 진실한 말씀과 찬양에 대한 자세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역자와 직분자가 예배 순서를 함께 담당하는 모습이 새로웠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목사가 주도하고 장로나 안수집사가 참여하는 성찬과 예배를 이루는데, 평상복 차림의 장로와 집사, 사모까지 함께 예배 순서를 맡아 진행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찌보면 이런 부분은 서구 문화권에서 보이는 개인주의 성향, 평등의 가치가 반영된 것일수도 있겠지만, 한국교회가 지나치게 목회자, 직분자 중심으로 예배를 이끌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이렇게 진행하려고 하면 성도들이 더 어색해 하리라 여겨지지만..)

 

4. 런던 힐송교회, 전혀 다른 예배 콘서트

  Ealing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에 맛있는 점심을 먹고, 3시에 있는 힐송 예배에 갔습니다. 힐송 교회(Hillsong church)는 런던 내에서도 다양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제가 찾아간 곳은 뮤지컬 '위키드' 공연을 하는 아폴로 빅토리아 극장이었습니다. 이 극장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한번(수, 토요일에는 2번) 공연을 하는데, 주일에는 공연을 하지 않고 힐송 교회가 예배하는 장소로 공간을 내어준다고 합니다. 다음주는 도미니언 극장(이집트 왕자 뮤지컬 장소)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걸 보니, 상황에 따라 예배 장소를 변경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극장 내부에 붙어 있던 포스터

 

예배, 전혀 새로운 사람과 공간

  힐송교회는 본래 호주에서 시작된 오순절 교회(여의도 순복음교회와 같은 교단)로 Brian Houston(브라이언 휴스턴) 부부가 1983년 호주 시드니 Hills(힐스)지역의 학교강단을 빌려 시작해서 지금은 전세계 주요도시에 캠퍼스(지부교회)를 두고 있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특히 찬양사역이 특화되어 있는데, 힐송이라는 앨범을 녹음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호응을 얻었습니다. 찬양 때문인지 지교회를 개척할때는 나이트클럽이나 뮤지컬 극장을 빌려서(음향의 이유로?) 예배를 드리는 것도 특징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아폴로 빅토리아 극장

  실제로 극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축제같은 분위기(나이트는 안가봐서 모르겠고;;;)였고, 예배 전부터 압도적인 음향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찬양팀의 찬양이 시작되자 청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신나게 찬양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미 접했던 음악들이었지만 실제로 같은 공간에 있을때 느껴지는 감동은 새로웠습니다. 한국에도 어노인팅, 마커스, 예수전도단, J워십 같이 좋은 찬양팀들이 존재했지만, 대학시절 선교단체에서 전국 수련회때 혹은 콘서트장에서 경험했던 전문적이고 잘 준비되어서 회중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모습은 분명 달랐습니다. 이 시간의 예배 찬양팀은 여성이 리더었는데 한국의 예배와는 다른 분위기여서 그렇겠지만 파워풀하고 열정적인 목소리와 몸짓으로 찬양을 인도했습니다.  

  이런 예배를 드릴줄 기대하고 왔긴 했지만, 마흔을 넘긴 목사라서 그런지 너무 현란한 조명과 지나치게 큰 음향이 어색했던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유로움이 느껴지고 하나님을 향해 집중하려는 진정성을 충분히 알아챌수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함께 갔던 아들이 눈을 번쩍뜨고 폴짝 폴짝 뛰면서 찬양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교회를 왜 가야하는건지, 자신은 하나님은 믿지만 교회에 가기 싫다고 하면서도 착한 아들 노릇하느라 교회로 예배로 데리고 다녔는데, 처음으로 수동적인 자세에서 능동적인 자세로 전환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찬양하는 모습

  아들 이외에도 주위에 앉았던 사람들을 보면, 찬양이 시작하기 전에는 낯선 사람들 투성이었습니다. 오후예배여서 그런지 어린아이는 볼수 없었고(어린이 주일학교도 있음) 머리색이 다양하고 피어싱을 하고 화장과 옷차림이 평소에는 볼수 없었던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찬양이 시작하고 나자 모두 찬양으로 하나가 되고, 눈물을 흘리며 손을 들고 찬양을 했습니다. 순간 천국에 가면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연결, 찬양 + 설교

  찬양이 끝나고 설교자가 등장했는데, 60살이 넘은 목사였는데 찢어진 청바지에 모자를 눌러쓰고 체인목걸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설교 내용은 예수님이 소경의 눈에 침을 뱉고 두번에 걸쳐서 눈을 뜨게 해준 본문을 가지고 긍정의 힘을 강조하며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설교자의 태도는 자신이 가진 한계를 내려놓고 런던 중심가에서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설교 내용은 지나치게 긍정을 강조하는 것이 이 본문의 메시지와 상관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조금 힘들었습니다.(순복음의 특징일수도 있지만;;) 하지만 함께 동행했던 청년은 자신에게 큰 힘이 되는 메시지였다고 소감을 나누는 것을 들으면서 내가 판단하는 한계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힐송교회와 사역을 위해서 기도함으로 지지하기로 맘먹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힐송교회 같은 비슷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뉴스기사: 홍대앞 욕망의 거리서 드리는 찬양) 2005년에 나이트에서 일회성 집회를 열거나 청년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즈음에 천주교에서도 홍대 길거리 미사를 드려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주요 뉴스에서도 소개가 되었고 대형교회도 나름 소신있게 추진했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예배 장소의 부적절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당혹감과 우려를 표현했고, 더 나아가 반대와 비난이 있었습니다.(그래서? 지금은 더이상 진행되지 않고 카페 예배 정도가 받아들여지는 듯 합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 그 예배와 미사에 참여했던 이들의 반응은 새로운 시도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출처: 교회와 신앙 아멘뉴스

   이런 긍정적인 태도는 지금도 존재합니다. 힐송 예배에 함께 갔던 아들은 흥분어린 목소리로 ''무료로 콘서트에 다녀온 것 같다, 예배가 너무 좋다'고 엄지척!을 했고, 그때 이후로 BTS노래와 비슷한 빈도로 찬양을 듣기 시작했습니다.(교회에서 드럼을 배우겠다고 하구요) 아들 이외에도 그 때 함께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을 봐도 힐송 예배는 세상에 가까이 다가가주어서 그들이 쉽게 하나님께 나아올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하나 놓는 일을 감당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소비되는 예배를 넘어 교회되기

  2시간 넘는 예배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데 런던 시내에는 이미 깜깜함이 짙게 내려 있었습니다. 위키드 공연을 하는 곳에서 콘서트 같은 예배를 참여하고 나오니 무척 새로웠습니다. 다시 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배 도중에 찬양이 끝나자 뜨겁던 열기가 급격히 사그러드는 모습이 아쉬웠고, 예배 후에 다시 수많은 대중 속으로 끼리 끼리 흩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 예배가 실제로는 감동이나 위로를 위해 소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남았습니다.

출처: 힐송교회 런던 센트럴 캠퍼스 공동체 모임 안내 (홈페이지)

  물론 이런 모습은 콘서트 같은 찬양에 특화된 예배 만이 아니라 결국은 (서두에 이야기한 고민 처럼) 예배와 하나님에 대한 관념적인 비인격성이 만들어내는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힐송 교회 홈페이지를 보면,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예배 후 공동체 모임(또래별, 지역별?)을 통해 교제와 양육, 봉사가 연결될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를 알수 있는데, 꽤 잘 하는 것 같아서 좋아보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소비되는 예배, 하나님과 성도에 대해 인격성이 상실되는 문제는 어떤 예배 형태를 갖더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하나님께 집중할수 있도록 돕고 실제로 성도들과 소통하며 관계를 맺게 하는가가 중요한데, 힐송예배는 찬양이 그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5. 이준기념교회, 이민교회의 일상과 선교

  마지막으로 소개할 교회는 네덜란드 덴하그에 있는 이준기념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네델란드 한인 교민들이 주축이 되어 개척된 교회인데, 2007년에 기독교대한감리교회를 통해 헤이그이준기념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준'은 구한 말 개화파로 독립협회와 감리교회에서 활동했고, 1907년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국차회의에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고종의 밀사로 파견되었지만 실패했고, 이 사건으로 고종이 폐위되었습니다. 그는 이 임무를 실패한 후에 네덜란드에서 죽어서 헤이그에 묻혔고, 1963년에 한국으로 봉환되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감리교에서 이준 기념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이준기념교회

  저는 이미 5년전인 2015년 1월에 이 교회에 한달여 출석했었습니다. 처형네가 네덜란드에 살고 있어서 방문했다가 목사님의 배려로 한주 설교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번에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가기전에 다시 방문했는데, 낯설기보다는 익숙하고 편안했습니다. 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느꼈던 편안함은 이미 알고 있는 곳에 와있다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편안함을 헤집고 들어가보면 전형적인 이민교회의 매력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외국 땅의 한국교회

  이민교회는 자연스레 한국인이 주축이 됩니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현지인, 외국인들도 그들의 가족으로 한 교회를 이루게 됩니다. 언어적 장벽이 존재하고, 문화적 다양성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민교회는 앞서 언급한 IPC교회가 추구하는 문화적 다양성과는 다릅니다. 한국적 정서(한국을 떠난 시점에 가지고 있던 주관적 가치)가 기초부터 교회 전반에 강하게 작용합니다. 그렇기에 예배도 한국에서 드리던 예배와 거의 같습니다. 부분적으로 헌금과 광고, 설교의 순서가 달랐지만 찬양팀, 성가대, 특송, 설교, 광고 모든게 익숙합니다. 외국에서의 한국어 설교와 한국어 찬양은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제공합니다. 

  사실 이런 류의 편안함은 이민교회가 아니더라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일수록 더 뚜렷한 특징이 됩니다. 분명히 구성원은 다양한데 한쪽에 그 모멘텀이 쏠려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모이고 있는 주요 멤버들에게는 익숙하고 편안하지만 새로운 사람이 동화되기는 어렵습니다. 개독교 논란과 가나안 성도를 양산한 한국교회가 도전받는 부분도 자신들의 편안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복음이나 하나님의 뜻이라 포장하는 것과 연관된 경우일수 있습니다.  세상과 소통하기 어려워하고, 나 아닌 타인과 관계 맺기에 서투르거나 거부하며, 자신의 편안함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 부분을 질책하고 개혁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해외에 있는 한인 중심의 이민교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될수 밖에 없는 환경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오고 가는 사람, 맞이하고 보내는 사랑

  이민교회는 유학생들과 주재원들이 계속해서 유입되고 동시에 빠져나가기를 반복합니다. 새학기가 되면 유학이나 교환학생으로 온 청년들로 청년부가 부흥하기도 하고 정 반대로 위축되기도 합니다. 주재원으로 온 가정은 몇년 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올때는 어린이(주로 학령기 전이나 초등학생)들이 이민교회 어린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데, 이들이 떠나가면 청소년기는 주로 친구들이 다 떠납니다. 결국은 교민 자녀들만 남게 되고 외로운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이렇게 사람이 오고 가는 상황에서 그들을 맞이하고 다시 떠나 보내다보면 다양성을 우선시하기가 어렵습니다. 잠깐 있다 가는 사람에게는 추억이지만, 교회 건물 운영비를 감당하고, 밥을 해먹이는 일은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 아래서는 건강한 교회일수록 목회자뿐만 아니라 교민 성도들도 끝없는 환대와 사랑을 베풀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여기서 헤아려지는 어려움은 정서적인 문제입니다.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안전해야 하고, 보내기 위해서도 역시 안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교회들, 굳어져서 새로운 가치들이 수용되고 시대에 맞게 복음을 통역해내기 어려운 부분도 이런 부분(정서적인 안정을 원함)과 연관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주체로서 교회의 멤버가 되어 자리를 지키는 것을 넘어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모임을 이루기 위해서 당연히 그들이 자신의 공간을 열어 환대하기 위해 그들에게 익숙한 안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상적인 목표로는 기존에 이미 교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건강한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되는 교제, 풍성한 관계를 누리며 안전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준이 되고, 나의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넘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 있는 샬롬을 누린다면, 얼마든지 변화할수 있고 포용하면서 자신을 내어줄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교회에서 그런 모습도 보았습니다. 5년만에 다시 만난 목사님은 이전보다 더 사랑이 흘러 넘쳤고, 모든 것을 내어줄것 같은 열정을 쏱아내고 있었습니다.  마침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교환학생으로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청년이 인사를 했는데, 목사님께서 회중앞에 소개하고 기도를 하는데 듣는 제 마음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정말 축복하는구나 싶어 고맙고 따뜻했습니다. 예배 후에 목사님께 인사를 건네니 반가운 얼굴로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십니다. 한주 들렀다 가는 내게도 이토록 사랑을 베풀려고 하시는 모습이 대단하게 여겨졌습니다. 처형 내외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목사님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진실하게 동역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마음에서 사랑어린 응원이 나왔고, 동시에 이런 상황에서 목사님과 성도들이 지치지 않도록 자신들을 돌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생겼습니다. 

5년 전에 방문했을때 찍은 교회 예배실 사진

 

한계 속에 빚어내는 최선

  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눈여겨 보았던 점은 모두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부분이었습니다. 모든 연령대가 함께 예배드리다가 마지막 설교 시간에는 어린이, 청소년들은 별도 공간으로 이동해서 따로 모임을 합니다.(교사들은 1부 예배를 따로 드린다고 합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간단한 성경공부(?)를 하고 자유롭게 게임도 하고 나가서 동네 아이들과 축구도 하며 즐겁게 놀았다고 합니다. 사역자가 목사 한명 뿐이고, 교사가 부족해서 어쩔수 없기도 하겠고, 한국에서 온 열정있는 봉사자 덕분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교회 주변이 공원이라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안전한 공간이 충분하다는 점도 그 즐거움의 한 부분일 것입니다. 

  이민교회를 보고 한국교회를 생각해보면 일상과 선교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습니다. 한인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를 이루었는데 그곳은 한국에서는 교회를 찾지 않던 이들에게 낯선 타국 땅에서 만날수 있는 문화적 편안함을 제공합니다. 그 것이 징검다리가 되고 오고 가는 이들이 복음을 듣고 신앙을 갖게 되는 통로가 됩니다. 어쩔수 없는 인적 물리적 한계들을 가지고 있는 일상이지만, 목회자와 성도들이 자신 안에 있는 사랑과 시간과 열정을 하나님의 사람들(교회로 모이는 모든 이)을 위해 내어 놓는 일상을 채웁니다. 이것이 그들의 일상이며, 그들의 선교였습니다. 

  이런 교회를 보고 한국의 교회를 보면, 한국교회 역시 크든 작든 언제나 한계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혼자 잘한다고 부흥할수 있을까 싶은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도 막상 봉사자는 적고, 실제 예배나 훈련을 통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교회(사람) 안에, 그 예배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안전함(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안에서 누리는 샬롬), 사람들과 함께 누리는 편안함이 있다면 우리의 일상도 하나님 앞에 함께 하는 선교가 될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6. 나가는 말: 나의 예배, 우리의 예배

  겨우 20여일 남짓의 여행 동안에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형태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각각의 예배마다 느끼는 감정과 떠오르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들과 함께 예배한 것이 하나님이라는 점은 분명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모든 공동체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뻔한 결론이 되어버린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속한 교회, 내가 드리는 예배가 가진 단점, 약점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하는 신실한 성찰을 요구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게 되고 마음이 떠나 고민하게 만드는 교회에도 장점이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예쁜 꽃을 찍었는데 교회가 있네요:)

 

내 주변의 교회

  한국에서는 장로교가 비교적 교세가 강합니다. 어떤 분들은 장로교 아니면 이단이라고 하는 분도 계실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교단이나 교파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저 집주변에 있는 교회, 친구가 오라고 초대한 교회에 다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다 현실적으로 살펴보면 다른 교파라고 하더라도 예배를 참여할때 느끼는 정서적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목사들 세계(?)에서는 신학적 차이를 가지고 자유주의자, 근본주의자 운운하며 자신이 더 옳다고 정색을 하기도 하지만, 정작 성도들은 교파보다는 장로, 권사, 집사 같은 직분에 따라 자신들의 영역을 구분합니다. 이런 정서 아래서 한국교회는 한편에서는 만인제사장의 기치를 강조하며 자유 민주주의 흐름을 고스란히 수용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아버지나 군주 형태를 모방한 담임목사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조직으로서의 교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 안에서도 각 교회마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합니다. 한국교회가 무엇이 잘못되었다 어떻게 해야한다 진단하고 처방하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필요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드리는 예배, 우리가 함께 참여하는 예배가 어떤지, 다른 이들은 어떤 예배를 드리는지 볼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나는, 우리는 어떤 예배를 드리고 싶은지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갑자기 마주한 온라인 예배 시대

  최근에는 코로나 19를 계기로 온라인 예배가 대중화되었습니다. 일부 대형교회들에서 지교회에 영상을 송출하던 형태로 기존에 사용되던 방법이었지만,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 때문에 모임을 자제해야 할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시작되었고, 사회적으로 요청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고 수용하려 하는데, 정서적으로는 어색하고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가 설교를 예배의 핵심(또는 신앙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목사님 설교를 온라인으로 많이들 들어왔습니다. 저 역시도 그냥 틀어놨다가, 다시 자세를 고쳐 집중하게 될 때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경험과 사회적 흐름과 별개로 온라인 예배에 대한 아쉬움은 분명합니다. 예배가 단순히 어떤 모임에 참여하고 어떤 행위를 하는 것 이상의 초월적 신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로 모여도 대부분의 성도는 보고 듣는 수동적 행위가 대부분이지만, 스크린을 통해서 단절된 시공간에서 온라인으로 보고 듣는 수동적 예배는 그 본질적 가치(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심)는 어려움을 갖습니다.

  물론, 그래도 설교에 은혜를 받을 수 있고, 혼자 예배하던 때처럼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잘해나가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사람 없는 예배, 삶으로 소통되는 일상이 빠져버린 예배, 혹은 그 안에서 풍성하게 되는 복음은 많은 제약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체감하기로는 현란한 광고지 같은 헛헛함을 느낍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밀란의 대주교, 마리오 델피니라는 분이 빈 성당에서 회중없이 방송 미사를 집전하며 한 이야기를 읽게 되었는데 참 공감이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미사에 참여하는 것과 TV 미사를 시청하는 것의 차이는 따뜻하고, 빛이 나고, 기쁨을 주는 모닥불 옆에 앉아 있는 것과 불 사진을 보는 것의 차이와 같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경험하는 인격적인 만남의 장입니다.

 

예배, 그리고 사람들, 교회 이야기

  이 글을 통해서 나누고 싶은 내용은 주일과 예배 가운데 존재하는 사람과 사람, 그들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 나의 하나님과 누리는 사랑입니다. 그 가운데 온전하게 자리잡는 샬롬이 핵심입니다. 저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같은 시공간에 함께 하며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아쉬운 부분 한계가 없지 않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느껴지는 예배를 기억하며, 그 순간을 사랑하고, 함께 했던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건강한 교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목사도 성도도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타인의 한계에 대한 판단이 너무 엄격한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습니다. 아니 어쩌면 정 반대로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너무 너그럽기만 한 분도 있는 것 같아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그 안에 작동하는 나 중심성을 인정하며 내 모습을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어떤 모습을 바라는지를 헤아리고 대화와 소통, 연대와 협력이 자연스레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연구소를 시작하고 나니 복음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붙들고 지내다보니 복음 아닌 것들이 복음 행세를 하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냥 내게 익숙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일뿐 그게 과연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이 아닐수 있다는 것을 알고나니 자유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나면 내가,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할수 있는 것들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을 갖고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있고, 한 교회로 만난 타인에 대한 사랑을 주고 받을수 있었습니다. 

가정예배 후 자연스레 놀이가 시작되었다죠

  코로나 19가 확산되던 첫 주는 교회에 가지 않고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브루더호프에서처럼 산책을 하고 카드 놀이도 했습니다. 또 한주는 아이들을 집에 남겨두고 교회에 가서 목사님과 성도님들과 마스크를 쓴 채 오직 눈빛으로만 사랑을 주고 받았습니다. 함께 여행했던 큰 아들과 힐송 라이브 예배를 보기도 하고, 반주하러 간 아내를 빼고 남자들끼리(세아들과 함께)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드렸던 예배들이 내 삶의 예배에도 있음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이 보시는 사랑을 누립니다. 나와 다르지만 나 같은 그 사람과 함께 웃고 떠들며 먹고 노래하는 일이 참 좋습니다. 이것이 나의 예배였고, 우리의 예배이기를 소망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