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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모음/말씀묵상(소감)

[성경 읽기] 사무엘상 20:1-42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by 샬롬보금자리 2020. 8. 31.

[기도] 사랑하는 주님, 이 아침에 주님앞에 나오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 생명이 주님께 있고, 내 삶이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에 주님의 흔적을 간직하는 생명의 삶 되게 해주옵소서. 마음에 찾아든 번뇌와 미움을 주님 정결케 해주소서. 억울한 일에 분노하고 울분을 토하고 싶은 심정을 주님 아시오니, 주님 돌보아 주옵소서. 주님 주님.. 주님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무엘상 20:1-42] 다윗은 요나단에게 가서 왜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는지를 묻는다. 이에 대해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을 해할 뜻이 없다고 한다. 다윗과 요나단은 다윗이 의심하는 바를 확인하기 위해 사울 왕을 시험하고 그 결과를 비밀리에 알릴 계획을 세운다. 요나단은 숨어 있는 다윗에게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리고, 그들은 서로에 대한 우정을 약속하고 요나단이 다윗을 보냄으로 헤어지게 된다.  

[본문 연구]

[20:1]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 다윗이 사무엘과 함께 라마 나욧에 거하는 동안, 사울은 2번의 전령을 보내고 자신까지 찾아왔었다. 비록 다윗을 잡으려는 일련의 시도들은 실패했지만, 오늘 다윗은 요나단을 찾아와서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울 앞에서의 죄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 질문을 들어야 할 사람은 사울이다. 하지만 다윗은 요나단을 찾아왔다.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다윗이 사랑받는 친구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그 당사자에게 이야기하기보다, 우리를 사랑하는 친구에게 말한다. 이런 정서적 지지의 관계는 우리의 생명을 지켜준다.

 

[20:2]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크고 작은 일을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는 행하지 아니하나니 내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이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 요나단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다윗에게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사울왕이 자신 모르게는 작은 일도 하지 않는다고 하며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가 아닐 것이라고 한다. 

 

[20:3] 다윗이 또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아버지께서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에게 이것을 알리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 요나단의 답변을 들은 다윗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요나단에게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했음을 강조한다. 사울왕이 요나단 몰래 다윗을 죽이려는 이유가, 요나단이 다윗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요나단이 슬퍼할까봐 말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상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요나단의 생명을 두고 맹세한다.

//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함: 

 

[20:4]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 요나단은 다윗의 진정에 대해 더이상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다윗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한다.

// 나도 이런 친구 있었으면 좋겠다. 다윗의 위험 때에 찾아올수 있는 친구, 만나면 자신의 모든 모습을 드러낼수 있는 친구, 네 소원을 들어주고 이루기 위해 동역해주는 친구.

 

[20:5-8]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셋째 날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네 아버지께서 만일 나에 대하여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읍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락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들리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그의 말이 좋아 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
 그런즉 바라건데 네 종에게 인자하게 행하라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으면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아버지에게로 데려갈 이유가 무엇이냐" 하니라 

// 다윗은 자신의 소원을 물은 요나단에게 사울왕의 진심을 시험해볼만한 상황을 제안한다. 왕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가정사 때문에 빠졌다고 하고 사울왕의 반응을 보자고 한다. 만약 사울왕이 화를 내면 그것은 다윗을 죽이려는 것이라고 한다. 

// 다윗은 요나단에게 인자함을 요구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맹약을 근거로 다윗이 죄가 있다면 요나단에게 죽임당하겠다고 한다. 

// 초하루. 민수기 10:10, 28:11-15을 보면, 초하루는 특별한 제사와 의식을 지킨다. 

// 인자하게 행하다 : 헤세드. 14-15절에도 등장함. "충성스런 언약"으로 번역하는게 좋을 듯 하다. 

//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 :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해서 언약을 맺었었다(삼상 18:3). 

 

[20:9] 요나단이 이르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확실히 결심한 줄 알면 내가 네게 와서 그것을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 요나단은 다윗의 말을 따라 사울왕을 시험해 보기로 한다. 하지만 요나단은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는게 확실하면 다윗에게 알리겠다고 한다.

 

[20:10]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아버지께서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알리겠느냐" 하더라

// 다윗은 요나단의 말의 진정성을 믿는다. 하지만 일어날수 있는 예측을 솔직하게 의논한다. 사울왕이 요나단이 다윗의 편을 드는 것을 알고 억압하면, 다윗 자신에게 위험을 알려줄수 없게 되는데 그럼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20:11]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 요나단은 다윗에게 들로가자고 한다.

 

[20:12-15]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 때에 내 아버지를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네게 알리지 않겠느냐
 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이일을 네게 알려 주어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하고

// 요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을 증인삼아, 사울왕의 의향이 선한지 죽이려는지 알려주겠다고 한다. 또한 만약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든다면 다윗을 평안히 보내주겠다고 하며 자신의 징벌을 담보한다. 

// 맹세의 형태는 보통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우거나(12:5, 창 31:50, 말2:14) 자기 징벌을 포함한다(삼상 3:17, 14:44, 25:22).

// 요나단은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하면서 다윗에게 자신과 자신의 집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한다.

 

[20: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 요나단은 진심으로 다윗의 편에서 기도한다. 

 

[20:17]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 다윗을 축복하는 이유는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8-23]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너는 사흘 동안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내가 과녁을 소려 함 같이 화살 셋을 그 바위 곁에 쏘고, 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 '보라 화실이 네 앞쪽에 있다'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

// 요나단은 다윗의 제안(20:5)대로 하되, 그 결과를 어떻게 알려줄지를 자세히 정한다. 그리고 이 대화를 하나님 앞에서 확증한다.

// 요나단의 다윗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알수 있다. 감동이 된다. 이런 사랑을 받을수 있을까? 혹은 이런 사랑을 할수 있을까? 

 

[20:24-25]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초하루가 되매 왕이 앉아 음식을 먹을 때에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아 있고 요나단은 서 있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아 있고 다윗의 자리는 비었더라

// 요나단과 다윗은 약속대로 실천한다. 초하루 왕과의 식사하는 자리에 다윗은 나타나지 않았다.

 

[20:26] 그러나 그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하였음이더니

// 사울은 다윗에게 즉각적인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다윗이 아무런 이유없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유조차 추궁하지 않고, 스스로 그 이유를 짐작한다.

 

[20:27] 이튿날 곧 그 달의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었으므로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묻되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냐" 하니

// 이틀째 다윗이 보이지 않자 다윗이 요나단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 사울은 다윗을 그 이름을 부르지 않고, 이새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요나단은 계속해서 다윗이라고 부른다. 

 

[20:28-29]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나에게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읍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령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내가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 사울의 질문에 요나단이 에전에 다윗과 약속한 대로 답변한다. 

 

[20:30-31]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

// 요나단의 답변을 들은 사울은 요나단에게 화를 낸다.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이 요나단 자신의 수치이며, 부모에 대한 수치라고 꾸중한다. 사울은 막연하게라도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왕권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사울은 이미 사무엘에게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울 것을 이야기 했었다.(삼상 13:13-14)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무엘상 13:13–14, NKRV)

 

[20:32]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 요나단은 다윗을 대변하여 죽을일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20:33-34]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한지라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식탁에서 떠나고 그 달의 둘째 날에는 먹지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 사울은 이전에 다윗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었다. 이번에는 요나단에게 화를 내면서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다.

// 요나단은 식탁자리를 떠났는데,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다윗을 죽이기로 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다윗에 대한 슬픔 때문이었다.

 

[20:35-39] 아침에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정한 시간에 들로 나가서 
아이에게 이르되
"달려가서 내가 쏘는 화살을 찾으라" 하고
아이가 달려갈 때에 요나단이 화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니라
아이가 요나단이 쏜 화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외쳐 이르되
"화살이 네 앞쪽에 있지 아니하냐" 하고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하매
요나단의 아이가 화살을 주워 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더라

// 요나단은 다윗과 약속했던 방법 대로 다윗이 위기에 처한 상황을 알려준다. 

다윗 시대 청동 화살. 화살촉에는 원시 가나안 글자로 이름이 새겨져 있다. 출처: Z. Radovan/www.BibleLandPictures.com  Carson, D. A. (Ed.). (2018).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p. 476). Grand Rapids, MI: Zondervan.

[20:40] 요나단이 그의 무기를 아이에게 주며 이르되
"이것을 가지고 성읍으로 가라" 하니

// 요나단은 아이를 돌려보내고 다윗과의 만남을 가진다.

 

[20:41]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번 절한 후에
서로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 다윗은 요나단에게 세번이나 절한다. 이는 깊은 감사를 표현한 것이다. 서로 입을 맞추고 운다는 표현은 서로에 대한 깊은 우정을 보여주며, 지금 이 순간에 다윗은 요나단의 이런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더 심하게 울었을 것이다.

 

[20: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 요나단과 다윗은 요나단의 보냄으로 헤어진다. 이전에 했던 약속을 다시 확인한다.

 

[묵상 및 적용]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다윗은 앞선 사울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애매한 상황이 계속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에게 피해 라욧에 머물기만하지 않고 직접 요나단을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죄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지만,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이 다윗 자신의 생명을 찾는 것에 대한 불안과 억울함이 서려있습니다. 

요나단은 먼저는 다윗이 죽음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아무 말이 없었고, 자신 모르게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윗의 불안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생각하는 시나리오를 다 설명합니다. 요나단이 자신 다윗을 좋아하는 줄 알고 요나단이 슬퍼할까봐 알리지 않은 것 뿐이라는 겁니다. 다윗이 느끼는 위기감은 자신이 죽음이 한걸음 차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렇게 두려워하는 다윗에게 요나단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4)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마음이 울컥 했습니다. 아.. 나도 이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두려움과 의구심을 모조리 쏟아놓을수 있는 친구, 그래도 불안해하면 무조건적으로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해줄것 같은 친구 말입니다. 억만금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나를 위해 어떤 죄를 담당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저 나의 실존의 불안감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언제나 내편이 되어줄 것 같은 친구. 그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나에게 그런 친구가 있지... 하며 몇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는 것 같아서 고맙고, 사랑하는 아내와, 부모님과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나 역시도 그런 친구, 그런 오빠, 그런 남편, 그런 아빠, 그런 사역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 주위를 가까이 혹은 멀리서 불안감과 기약 없는 막막함을 만들어 냅니다. 교회의 예배는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연구소 모임도 2주간 취소 및 이후 계획은 잠정 연기했습니다. 혼자서 하던 책읽기와 글쓰기는 그냥 하면 되는데, 덩달아 싱숭생숭해진 탓인지.. 자리에 좀처럼 앉아있기가 힘이 듭니다. 몸은 고단하고, 머리는 아프고, 마음은 울렁입니다. 이 불안감을 마냥 받아들이는 것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다윗을 보니 나도 요나단을 찾아가서 그에게 따질 것은 아니지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따져 물어야겠다 싶습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니 내가 따져 물을 대상이 없습니다. 이런 지경에서는 하나님이 나에게 요나단입니다. 하나님, 내 죄가 무엇입니까?! 핏대를 세우려고 보니.. 벌써 내 죄가 영화 필름처럼 주르륵 지나갑니다. 할 말이 없고 숨이 막혀옵니다. 내가 죽을만 한데.. 내가 아직 살고 있구나. 내가 수치와 모욕을 당할만 한데 내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사람구실하는 모양으로 살고 있구나 싶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그리었던 청년을 흠모했건마는 나는 고개를 숙이고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지경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괜찮다고... 너는 죽지 않는다고 위로하지만, 그래도 의심하고 불안함이 쉽게 떨쳐지지 않습니다. 이런 삶에 주저 앉아있기만 하지 않고 일어나서 걸음을 내딛어 나아가면 분명 새로운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간단한 찰나를 실행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필요하고, 내 소원을 아는게 필요합니다. 

나는 이 불안감, 불확실함을 어디서 어떻게 마주하고, 해결할수 있을까... 아직은 막막합니다.

내 마음과 바램과는 상관없이 친구가 떠나가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다윗도 요나단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신뢰했지만 서로의 마음을 알기에 헤어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현실로 마주하기 전까지, 다윗의 소원은 자신을 향한 사울의 위협이 실제인지 아는 것, 그 위협이 실제라면 사울이 아니라 차라리 요나단에게 죽는 것이었습니다(8). 하지만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 일이 결코 네게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말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다윗의 안위여부를 돌보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울왕이 다윗을 자신과 요나단의 왕권에 대적하는 자로 여기자 다윗을 대신해서 다윗이 죽을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지다가 사울이 단창을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요나단은 약속대로 다윗에게 그 사실을 알립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세번이나 절하고 울면서 헤어집니다. 요나단은  평안히 가라고, 다윗을 떠나보냅니다. 

좋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 것, 그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기쁘고 행복한 일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다윗에게 요나단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 정말 큰 위로와 용기가 되고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요나단도 다윗을 이유없이 사랑하고 아끼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과 신뢰로 인해서 이 둘은 결국은 헤어지게 됩니다. 헤어지는 것이 최선인 때가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어쩔수 없이 연구소 모임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됩니다. 누구를 미워서 싫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슬프고 아쉽지만 그리 해야 하는게 맞습니다. 교회도 예배를 비대면으로 드리고 온라인으로 대체합니다. 식사를 멈추고 모임을 멈춥니다. 온라인 만남으로 전환을 잘 해내는 교회도 있지만, 모든 사역과 교회 전체가 멈춰버린 것 같은 교회들도 있을 듯 합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모이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 하는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수 있습니다. 목사도 성도도 안전해집니다. 그렇다고 슬픔이 없지 않고, 고마움과 미안함이 없지 않습니다. 보내는 자나 떠나는 자나 다 아쉬움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헤어짐, 이 떠나감이 슬프고 아쉬운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돌보고 신뢰하고 응원하는 마음 역시 분명합니다. 친구들과 이런 관계안에 있고 싶습니다. 미워서 떠나고, 원망과 불평으로 분쟁을 일으키며 분파주의로 나아가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조금 더 보둠고 사랑하고 응원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아내와 자녀들과 부모님들과 이렇게 살아야지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실제적 순종이 필요하구나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하루가 참 길고, 깁니다. 위기를 넘고 넘고 넘어가면서도 새롭게 몰려오는 불안감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때 만날수 있는 친구,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내 모든 이야기를 다 꺼낼수 있고, 내 삶의 생명의 소망을 지필수 있는 좋은 친구가 생각납니다. 그 친구를 하나님 앞에서 축복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몸과 더불어 마음, 영혼도 건강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고, 살만한 생기를 더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알고 아끼고 사랑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며 생명이 북돋아지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을 찾도록 찾게 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지혜를 더하시고, 용기를 더해 주옵소서. 약할때 강함되시는 주님, 슬픈자에게 위로가 되시고, 죽은자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지켜주며 응원하며 일으켜 주는 복된 삶 살게 하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