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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독서모임:함께읽기

독서모임(2020.11.09)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한창훈)

by 샬롬보금자리 2020. 11. 16.

 

 11월에 새롭게 읽기 시작한 책은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입니다. 용현님의 제안으로 그동안 읽던 책과는 다르게 오랜만에 "소설"을 읽기로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모임이 어려웠지만, 마스크를 쓰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책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겨우 두 챕터를 읽었는데, 읽으면서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피식, 하하하 웃음이 간간히 이어졌습니다. 글은 간결했고, 그림은 글로 말하는 것 이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연스레 나눔은 풍성했고, 여운이 감돌았습니다. 함께 읽고 싶은 책, 선물하고 싶은 책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모임 시간에 읽었던 두 챕터 나눔을 정리했습니다. 두 번째 모임(11월 16일에는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 대화하는 집을 열어서 서로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듣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 번째 모임(11월 23일)에는 3장(그 아이), 4장(다시 그곳으로)을 함께 읽고 나눌 예정입니다. 

1. 그 나라로 간 사람들

줄거리요약

 국가의 정략적인 목적에 의해서 외딴섬에 파송된 군대가 혹독한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군대와 함께 왔던 측량사는 철수하지 않고 이 섬에 남겠다고 합니다. 그는 모두가 살인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섬에서 '여러 가지 피어나는 꽃'을 보고, 푸른 사파이어를 담은 '바다'와 하얗게 날아오르는 '물새'를 보고,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를 봅니다. 군대가 머물던 진지를 떠나 새 집을 만들고 문명의 흔적과 전쟁 도구들은 생활하는데 필요한 사소한 것들로 배경으로 퇴화합니다.

 그런 그의 삶에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파선된 배의 선원, 구명정을 타고 표류하던 사람들이 그 섬 생활에 합류했습니다. 강한 해류에 풍랑이 잦은 탓에 조난해오는 사람들이 이 섬에서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일부는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다른 일부는 이 섬에서의 생활을 원했고 그렇게 그들은 섬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각 사람마다 가진 재능으로 섬마을은 학교도 생기고, 약을 만드는 사람, 그물 수선하는 사람, 국수를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살다 보니 불평이 생겨 첫 번째 회의를 합니다. 여기서 마을의 하나밖에 없는 법이 만들어집니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이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닥쳐올 재난을 예견한 국가가 이 섬사람들을 자신의 나라로 데려왔습니다. 이들은 지도자들의 생색내기와 첨단 기술 문명과 자본주의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매주일마다 모여 섬사람들끼리 모임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쉼을 지냅니다. 2년 동안 그곳에 머문 뒤에 남기를 원하던 4명을 제외하고 함께 그 섬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섬으로 돌아갑니다. 

p.19 
"법이 너무 많으면 헷갈리기 쉬우니 딱 하나만 합시다"
/ 무척 이상적이고, 그렇게 간단하게 살 수 있을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법은 어떤 선을 행하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악을 억제하는 기능을 할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악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이룬 상대적(시대적, 문화적) 산물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법을 세운다면 무엇을 세울 수 있을까요? 성경은 내가 받은 사랑에 기초해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나를 사랑하는 것처럼)을 이야기한다. 

p.20 
"깊은 관심은 끝내 해결책을 찾아내는 법이다"
/ 하려고 하면 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가 정말 원하던 것이냐와는 별개이겠지만, 하려고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샬롬 복음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인식하고 그것을 하나님께로 가지고 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것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p.21
바다를 바라보던 어린 주민 하나가 바다의 특징을 이야기하며 파도처럼 하기로 법을 정함.
"어는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만나면 서로 손을 뻗어 어깨에 대는 것으로 인사함.
/ 우리 문화권에서는 좀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아바타(2009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서도 어깨에 손을 얹는 장면이 생각남.
/ 예배 끝무렵에 서로를 보면서 축복하는 것도 어색한데, 이렇게 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어색할 것 같음. 
/ 이 법은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선생의 칼럼 <단 한 줄의 법조문만 있는 나라>에 실린 남대서양 화산섬, 트리스탄 다 쿠냐 섬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함.  p.172

p. 22
"늘 국민의 안녕을 걱정하시는 우리 지도자께서 여러분을 속히 모셔오라고 지시했습니다."
p. 24
관리, 고위 관리, 지도자가 차례로 나와서 모두 같은 말을 반복하고 점점 더 많은 사진기자들이 사진을 찍고, 주변 나라에 소식을 전함.
/ 작가의 이런 시선이 흥미롭다. 실제로 지도자들은 이런 것 같다. 사진 찍기에만 관심 있고, 사진만 찍어대는 기억이 난다.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섬사람들을 걱정한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섬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일의 일부로 그 인격적인 특징을 잃어버린 주변 나라와 국내에 처리해야 할 일 같게 느껴진다.

p.26
섬주민들에게 공장과 축구 경기장을 보여줄 때 주민 사람들이 말하는 "이 짓"
"기계가 기계를 만드는 것을 왜 부러워하는 거죠?"
"이제 그만 우리를 놔주시오. 이 짓을 계속하다가는 죽을 것만 같소"
/ 오늘날 현대 사회가 대단하게 여기는 것들을 구경하는 것을 별 의미 없게 여기는 삶의 가치가 담긴 표현 같다. 실제로 작가의 인터뷰들을 보면 이런 가치관이 물씬 느껴진다. 

p. 27
정부에서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것을 거부함. "우리는 스스로 먹을 것을 만들어왔소. 이곳에서도 그럴 것입니다"
/ 독립, 자립하는 삶은 참 중요한 것 같다. 예전에 EBS 다큐멘터리 <자본주의>를 보면서 자본주의 Capitalism의 모순과 폐해를 느꼈지만, 화폐를 통용하는 자본주의에서 분리되어 독립할 수 없기에 뾰족한 해법을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이 기억난다. 
/ 돈을 매개로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 같다. 돈을 주고받으면서 해야만 하는 일들이 부가적으로 따라온다. ㅠ.ㅠ

p.28 
섬사람들은 그들을 필요로 하는 일을 했다.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섬사람들이 대부분 그 일을 같이 했다. 월급을 받으면 식재료 사는 것 외에는 돈을 쓰지 않고 저금했다. 휴일이면 한 곳에 모여 서로 손을 뻗어 인사 나누고 점심거리를 만들어 뒷산으로 올라 바다를 보며 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밥을 먹고 가만히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 마치 브루더호프에서의 삶을 보는 것 같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는데 관심을 갖는다. 도시 공동체도 있지만, 주로 자연이 가까운 곳에서 소설 속 섬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지낸다. 

p.29
휴일에 쇼핑도 하고 파티장도 다니라는 말에, "지금도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럽습니다"라고 답함
/ 지금도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 열심히 일하고 쉬는 것 그 이상 원하는 것이 없는 삶이 당연해 보이면서도 현대인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 우리가 갖고 싶다거나 놀고 싶어 하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보여진 것을 따르고 싶어하는 것들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욕구라기보다는 타인의 욕구를 모방하는 것이 소비나 놀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 그런 면에서 보면, 현대인들의 쉼은 아무것도 안 하는 쉼만으로는 부족한 새로운 자극을 통해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로 보인다. 현대 사회는 한 사람은 그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데 한 역할을 감당하는 존재로 본다. 그래서 개인의 사적인 감정보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사람을 전문가라고 추켜 세운다. 말하자면 현대인의 삶은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인격으로 통합되기보다 다면화된다. 그 피로감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자극을 찾아 쇼핑을 하거나 파티장에 가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이면에서 이런 욕구를 자극하는 자본주의와 언론의 광고에 휩쓸리는 것에 대한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p.30
섬사람들의 하나의 법에 흥미를 느낀 법학자의 질문에 내놓는 상식적인 답들.
"누가 배가 고파 찾아오면 나누어 먹죠"
"개가 남의 집 정원을 망쳐놓으면 개를 야단친 다음 쓰다듬어줌"
"서로 자기 땅이라고 이웃 간에 분쟁이 일어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함"
p.32
"흥분은 결국 가라앉기 마련. 거센 풍랑도 언젠가는 가라앉듯 말입니다"
/ 법학자는 섬사람들이 숫자가 적어서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예는 실제로도 많은 것 같다. 소유를 함께 통용하는 초대교회 같은 공동체를 꿈꾸며 야심 차게 시작한 공동체들이 많았다. 여전히 존재하는 공동체도 많지만 그보다 몇 배 더 많은 공동체들이 더 큰 실망감과 상처를 안고 뿔뿔이 흩어졌다. 
/ 작가가 보여주는 이 섬사람들의 삶이 가능하려면, "이웃을 가족처럼 여겨야 한다. 더 명확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 '나'로 여겨져야 가능하다". 
/ 아주 상식적인 것 같지만, 실은 이 최소한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람들(선악과를 몰래 먹은 아담과 하와), 혹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 때문에 (예를 들어, 최초의 살인자 가인) 법이 생겨났다. 
/ 흥분은 가라앉기 마련이라는 말은 맞는 말 같지만, 사실은 지나친 낙관적인 태도이다.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그에 따라 극단적인 사건들도 늘고 있다.(학교폭력, 가정 내 학대)

p. 33
주민들은 주말 모임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 이 부분을 읽자마자, 예배 같았다. 매주 모이는 모임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섬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어가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작가가 그리는 섬사람들은 연구소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자연 속에서 지혜를 배우고, 겸손하게 자신의 삶을 살며 먼저 있던 사람들의 것이라 주장하기보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자연속에서 쉼을 누리는 모습이 있다. 하지만 시민활동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런 이상에는 자연(섬 풍경, 파도)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 같다. 대신한다기보다는 자연으로 드러난 것에서 하나님을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현대인들은 행복한 삶, 풍성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 삶에 하나님이 없이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이 공급하는 기쁨과 만족을 꿈꾸는 것 같다. 

출처: yes24 서평

2.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

줄거리 요약:

  두 번째 이야기는 남겨진 네 명 중에 쿠니라는 여인의 이야기다. 그녀는 그 나라 청년과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문화 차이로 이혼했다. 우연히 공원 벤치에 앉아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일이 계기가 되어서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을 열게 된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목이 마를 때 입을 적실 차를 줄 뿐이었다.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고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직원을 뽑는 조건은 '도중에 끼어들지 말고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는 것'이었다. 이후에 그녀는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에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밀로 지켜주고, 듣기 원칙을 끼어들지 않는 것에서 필요할 때 맞장구쳐 줄 것으로 바꾼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의 청혼을 받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을 요구하며 '쿠니의 대화하는 집"으로 초대한다.

p.41
 쿠니가 남편과 살면서 배우고 외우고 해야만 했던 일들, 쿠니가 이미 가지고 있는 습관들 이야기, 
/ 내 삶이지만, 내가 기준이 될 수 없고 다수가 살아가는 것이 기준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 이런 점 때문에 뉴스를 듣는다. 시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p.42
"당신과 나는 너무 다르군"
예시로 등장하는 자동차 vs 호박벌에 대한 반응을 서로 이해하지 못함. 
'서로 다르다는 것은 두 사람을 결혼하게도 했지만 헤어지게도 했다'
/ 자동차는 법규를 통해 약속을 지킨다는 전제하에 예측 가능하지만, 호박벌에 쏘이는 것은 확률이 낮겠지만 그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고 호박벌과 약속을 할 수도 없다. 이는 익숙한 것과 낯 섬이라는 관점에서는 쿠니와 남편 모두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문화, 나와 다른 의견과 판단, 반응을 그들의 것으로 인정하는 여백 없이는 누구나 자기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해서 판단하고 이는 서로에 대한 답답함이나 분노로 이어질 것 같다.

p.43에 나온 그림
/ 서로 다른 점이 매력으로 느껴지고, 서로 다름이 고통이 됨 -> 이는 하나 됨에 있어서(공동체를 이루는데) 무척 중요한 원리이다!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것, 쌍둥이조차도 다른 이유는 서로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풍성한 삶을 위한 배경 설정이다. 서로 다름이 고통이 되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그를 나와 같게 만들려는 시도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때 사실은 무채색으로 퇴화하고 만다. 서로 다름이 아름답게 조화되는 연합이 공동체가 그리는 이상이다. 성경은 이를 삼위일체 하나님에게서 그리고 하나님이 짝 지워주신(기초/중심이 되는) 부부 관계로 설명한다. 

p.45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날 중에 오늘이 가장 부자잖아요"
/ 현명한 일침이다!
/ 마찬가지로 앞으로 남은 날 중에 오늘이 가장 젊다. 

p.46
"그렇다면 이 돈을 받고 내 말을 계속 좀 들어줘" 
그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노인들은 끊임없이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을 찾아왔다.
/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이 시작되는 첫 장면이 인상 깊다. 우리도 내 이야기를 쿠니에게 들려준다면 어떨까? 나라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할까? 다음 시간에 해보자~
/ 교회에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안전하게 들어줄 수 있는 곳, 정답이나 아는 것을 가르쳐주는 대신 대화 나눌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p. 49
쿠니도 처음에는 적당히 대꾸했다. 남의 말을 듣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법이니까... 그러면 말을 꺼낸 노인들이 쿠니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을 말로 바꾸면 '나도 알아'였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고 그들은 말을 계속했다. 그들이 공원을 어슬렁거렸던 이유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입이 아니라 귀를 찾고 있던 거였다. 
/ 정말 그런 것 같다. 답을 찾는 게 아니라 그저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 사람들은 "입"을 찾는 게 아니라 "귀"를 찾고 있는 것 같다.

p.58
/ 자신들은 열일곱 번째 대학을 나와서 자녀에게는 첫 번째 대학을 가야 한다고 종용하며, 그것을 '기대'라고, 자신들보다 나아지는 것을 기대한다. 이 기대는 한편으로는 '사랑'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사랑이다. 듣는 사람에게 들리는 대화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대화이기 때문에...  

p.59
쿠니의 직원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기만 한다는 것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 "마치 쉬지 않고 매를 맞고 있는 느낌이에요. 미쳐버릴 것 같아 그만둘까 생각하는 중이에요"
/ 듣는 것이 정말 힘든 것 같다. 이후에 쿠니가 대화하는 집으로 바꾸는 것은 건강한 결정인 것 같다. 무엇이든 일방적인 것이 좋기는 힘들다. 처음에야 무조건적 수용이 필요하지만, 이후에 어느 시점에는 반드시 상호 교류가 필요하다. 이것이 건강한 관계를 맺고 행복을 누리는 사이좋은 관계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처음에는 하나님이 들으시지만, 신앙이 성장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말을 듣기도 하고 서로 대화를 하게 된다. 그게 건강한 관계이고, 그 안에 샬롬이 풍성해진다. 

p.60
"복수하고 싶어요. 내가 죽어 아버지 어머니를 가장 슬프게 만들어 버리고 싶어요"
"그러면 너마저도 슬퍼지고 말아."
.... '죽음은 찾아오기를 평생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먼저 찾아갈 필요 없어.
/ 고통을 느끼는 자들의 반응, 고통을 되 갚아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되갚아 준다고 그 감정이 보상되지는 않는다. 아들러의 '미움받을 용기'처럼 과거를 과거로 놔두고 지금 다시 삶을 선택해야 한다. 
/ 죽음마저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늘 살기 위한,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점이라는 면에 있어서 역설적이며, 쿠니가 찾아가 대화를 나눈 것처럼 고통받는 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절대로 죽지 않을 것 같다. 

p.62
/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아이의 병치레를 걱정 하며 어떤 주사나 알약이 우리 아이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겠느냐 묻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 아이가 아닌 아빠의 허전한 마음이 느껴진다. 
/ 아이는 생각보다 적응력이 높아 잘 자라는 것 같다. 우리가 문제 있게 보는 시선이 그를 문제 상황 속에 있다고 여기게 한다. 

p.64
하늘은 하늘에 있고
바다는 바다에 있네
엄마는 엄마에게 있고
우리 아이는 우리 아이에게 있네
/ 그냥 뻔한 말 같은데 마음에 와 닿는다. 다른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 존재에서 그 존재를 찾아야 한다. 다른 존재가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존재(역할이라는 말로는 기능적인 면만 강조되고 실제로 그 존재감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를 알아보는 쿠니의 노래가 좋다.
/ 사실 보기의 한 차원인 것 같다. 객관적인 실체인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반응을 선택하기 위한 기초 단계이다. 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의 한 예일수 있다. 

p.65
"말은 그 사람 자체예요. 그렇기 때문에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읽는 것과 같아요."
p.66
"진정으로 가까워지려면 서로 번갈아 이야기하고 관심 깊게 들어야 한다는 거, 듣는 것도 마치 말하는 것 같아야 한다는 걸요"
/ 경청의 중요성이 설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공감이 된다. 소설의 장점인 것 같다. 
/ 나도 이런 연인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다.
/ 부모님을 보니, 서로 관심 깊게 듣지를 못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서로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자기 말을 반복하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아마도 자기 말을 알아들으면 자신에게 동의하리라는 확신이 있어 보였다. 
/ 말은 그 사람 자체..라는 말이 참 남는다. 그냥 그때 하는 말 같고, 장난스러운 말 같으면서도 묘하게 그 사람의 인격이 느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