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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모음/말씀묵상(소감)

[QT 소감] 돌려주는 복 (창33:1-20)

by 샬롬보금자리 2020. 2. 24.

돌려주는 복 

본문: 창 33:1-20

오늘본문에서 야곱은 에서를 만나서 화해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옵니다. 그 과정에서 야곱은 에서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선물을 주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1부. 야곱이 에서에게 돌려주는 복으로서의 선물

야곱은 에서를 만나러 갈때 앞장 섭니다(3). 물론 자신의 가족들은 가장 사랑하는 순서로 뒤에서부터 배치를 했습니다(1-2). 그래도 야곱이 앞장선 것은 그의 당당함을 엿볼수 있게 합니다.야곱은 에서를 만나러 가는 길에 에서를 향해 일곱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했습니다(3). 그리고 형을 가리켜 “내 주 my lord”라고 부릅니다.(8,13,14,15절)

이전에 이미 수차례에 걸쳐 에서에게 예물을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 야곱이 보여주는 태도는 에서를 향해 예의를 갖추고 높여 대하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흥미롭게도 본래 야곱은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을때 야곱이 에서에게 절을 받는 주가 된다는 내용을 들었습니다.(27:29) 그런데 지금 야곱은 정 반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창세기 27:29, 개역개정)

야곱이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야곱은 형과 아버지를 속이며 이 복을 누리고자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받지 않은 복을 받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기보다 주가 되어 절을 받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이 그 복을 받은 결과는 그가 예상하던것과는 다르게 전개되었습니다.형 에서는 자신의 복을 빼앗겼다고 생각해서 아버지 이삭이 죽으면 야곱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27:41) 이런 위협을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열심히 일했지만 속이는자 야곱이 속임을 당하고 여러번이나 약속된 삯을 번복하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런 역경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일을 하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되어가는데 세상은 오히려 야곱에 대해 적대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으로 형의 복을 빼앗아서 얻은 복,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데 삶은 점점 어려워져 갔습니다. 

야곱은 형을 만나기 전날 밤에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만나 씨름했습니다. 엉덩이뼈를 맞고 쓰러졌지만 자신을 축복해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자신이 만난 분이 하나님이신줄을 알자 야곱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에서를 두려워하면서도(아끼는 가족을 뒤로 배치하는 것을 보면) 앞장섰고, 자신이 받은 복을 확신하며 에서에게 절을 받으려 하지 않고 먼저 엎드렸고, 자신을 주라고 높이기보다 형을 내 주라고 높였습니다.

그리고 에서에게 자신이 주는 예물을 받아달라고 부탁합니다(10). 여기서 야곱이 에서에게 받아달라고 간청하는 “예물”이라는 단어는 “복”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27장에 12, 35, 36, 38, 41절에서 특히 에서에게서 야곱이 빼앗은 복, 이삭이 축복하는 복을 의미하는 “복”으로 사용되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에서에게서 속여 빼앗았던 복을 다시 에서에게 보상하는 선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는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의 지도아래 거짓으로 속여서 복을 받은 것에 대한 회개이자,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섬김의 삶의 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할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이며, 다스리는 자가 됩니다. 하지만 그 복은 내가 스스로 찾아 이루고 완성하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복을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그 누가 가로막아도 막을수 없는 복입니다.

또한 다스림은 높아져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아져 섬기는 다스림입니다. 진정한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라는 것이 그냥 선거철 용어가 아닙니다.예수님이 스스로 낮아져서 인간을 섬기고 죽기까지 사랑하심으로 만유의 구원자로 만왕의 왕으로 찬양을 받는 것이 이런 하나님의 사람의 단편을 보여줍니다.

오늘 야곱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분명히 이런 방향으로의 전환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2부. 하나님을 보는 야곱의 삶, 예배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서 자신의 선물을 받아달라고 하면서 에서의 얼굴을 보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11). 또한 숙곳을 지나 세겜에 장막을 치고는 거기에 제단을 쌓고 엘엘로헤 이스라엘(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이 된 이후에 처음으로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장면)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제 보니, 야곱은 제법 하나님과 친해진 것 같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 전날 밤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인줄도 모르고 한참을 씨름했는데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봅니다.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됨을 보고,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노래를 들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헤아려 지고, 영화를 봐도 공부를 해도 하나님 생각이 납니다.

야곱은 에서가 자신을 두팔 벌려 끌어안고 입맞추고 함께 우는 재회를 하고, 에서가 이렇게 너그럽게 맞아주니 형의 얼굴을 보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엘엘로헤이스라엘.. 자신의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렇다고 야곱이 한번에 완전히 새사람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야곱은 자신을 안내하겠다는 에서를 먼저 보내고, 에서의 종들도 거절했습니다. 야곱이 에서에 대한 경계를 다 내려놓은 것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숙곳과 세겜에서 장막을 세우는 것은 에서를 따라 가겠다는 말과는 다른 행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일상에서 하나님을 떠올리지만 여전히 자기 중심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야곱 왜이래? 하며 딴지가 걸리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는.. 나는 이렇게 삶을 살아갑니다.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안전과 성공을 갈망하고, 회개와 겸손을 배우고, 다시 불신과 아집으로 삶을 부여잡고, 그 가운데 하나님을 부릅니다.

3부. 나의 예배, 나의 선물


나는 오늘 야곱을 통해서 내 삶의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야곱이 바라던 복은 그가 알던 것과 달랐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축복이 주문처럼 마법처럼 그를 복되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이 엄마의 뱃속에 있을때 계획하신대로 복되게 하시는 복이었습니다. 내가 부여잡고 쟁취하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하나님인줄을 알고 그 하나님 때문에 기꺼이 양보하고 엎드릴수 있는.. 그러고도 남는 은혜를 누리는 복입니다. 

내가 받은 복도 그러하다고 여겨집니다. 나만 하나님에게 특별한 복을 받아서 남들보다 높은 지위를 얻는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내게 주신 재능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살아가는 것이 복입니다.내 가정이 복이고, 내 삶이 복입니다. 

내가 높아지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모아서, 공부를 많이하고, 다른 사람을 잘 가르쳐서 높아지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기에 기꺼이 앞장설수 있고, 기꺼이 엎드릴수 있고, 원수의 얼굴에서도 하나님을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미적거리며 엉뚱한 곳에 장막을 세우지만, 여기서도 엘엘로헤 이스라엘, 나의 하나님을 불러봅니다. 그리고 내가 쟁취하려던 복을 기꺼이 기쁨으로 선물로 내어 주고 싶습니다. 

형님, 형님께서 저를 좋게보시면, 제가 드리는 이 선물을 받아주십시오. (창 33:10 쉬운성경)

NIV Study Bible


하란에서 도망치던 야곱은 길르앗(Gilead) 산지에서 라반과 만났습니다. 
길르앗에서 라반과 언약을 맺고 미스바(Mizpah)라고 불렀습니다. 
그 뒤에 야곱은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나고 나서, 마하나임(Mahanaim)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야곱은 브니엘(Peniel)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했고, 형 에서를 만났다. 
에서를 만난 뒤에 숙곳(Sukkoth)에 장막을 쳤고, 다시 옮겨서 세겜(Shechem)에 땅을 사고 장막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