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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의 인생: 에서를 아시나요?

by 샬롬보금자리 2020. 3. 2.

에서의 인생 : 에서를 아시나요?

#상남자, #부모님께인정받고싶어라, #화해의이별

야곱과 에서의 만남 (출처: Logos bible software)

본문: 창세기 36장 1-8절

에서는 이삭과 리브가의 쌍둥이 아들인 야곱의 형제로 이 가정의 첫째 아들(장자)였습니다. 하지만, 동생 야곱에게 장자의 복을 빼앗겼던 사람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에서의 책임도 없지는 않지만 결정적으로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자신의 복을 가로챈 줄을 알고나서는 아버지가 죽으면 야곱을 죽이겠다는 말을 해서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피신시켜야 할정도로 위기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장자권을 팥죽 한그릇에 팔아버리고 불같이 화만내는 에서... 그리고 야곱이 돌아올 때 보복 당할까봐 두려워하던 대상으로서의 에서가 보통 알고 있는 에서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가 중심 이야기를 이루다보니, 그 중심 이야기를 전개하는 부수적인 등장 인물 정도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에서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습니다. 비록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지는 않지만 이삭의 죽음 이후에 오늘 본문 통해서 에서의 가족사를 정리해서 언급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는 에서의 아내와 그 자녀들을 소개합니다.(1-5) 그리고나서 에서가 다른 곳으로 간 이유를 밝히며 어디에 정착했는지를 설명해줍니다(6-8)

1부. 세 아내의 남편 에서: 상남자,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더라

먼저, 에서의 족보를 살펴보면 에서의 아내는 3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이 좀 흥미롭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6장 2-3절에 보면, 에서는 가나안 여인 세사람을 아내로 맞았다고 소개합니다.

첫번째는 ‘아다’라는 여인이고, 헷 사람 엘론의 딸입니다(3).
두번째는 ‘오홀리바’인데, 히위 사람 시브온의 딸 아나에게서 태어난 여인입니다.(3)
세번째는 ‘ 바스맛’으로 큰아버지(이삭의 배다른 형)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입니다.(3)

에서가 이 세 명의 아내를 얻은 과정은 창세기 26-28장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6:34–35 (NKRV)
34 에서가 사십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먼저, 에서는 40세에 첫 결혼을 했는데,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 했습니다(34). 이때는 아직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속여 빼앗기 이전이었는데, 에서가 형이긴 하지만 야곱과 동갑내기 쌍둥이였던 것을 생각하면 특이점이라 할수 있습니다.(에서의 아버지 이삭도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했음 창25:20)

에서의 아버지 이삭은 오직 리브가 1명의 아내와 평생을 살았는데, 그 아들 에서는 2명의 아내를 한번에 얻은 것입니다.(혹은 일년에 2명을 얻었을수도 있음)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으로 들사람이라고 불리우는 상남자였고(25:27) 아버지 이삭도 이런 에서를 좋아했다고 했는데(25:28), 그렇다면 이런 에서가 당시 주변 사람들(특히 짐승남을 좋아하는 여인들?)에게도 호감을 얻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좀더 자세한 내막을 설명해주지 않지만, 그 2명의 가나안 여인들(헷 족속)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는 점은 명확히 말해줍니다.(창26:35)

이런 정황은 그 뒤에 리브가가 야곱을 피신시키기 위해 남편 이삭에게 말할 때도 나타납니다. (창 27:46)

창세기27:46 (NKRV)
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이런 리브가의 재촉을 받은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고 밧단아람(리브가의 오빠 라반이 살고 있는)으로 보내어 아내를 얻게 하면서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창28:6)

이를 본 에서가 자신도 가족중에서 아내를 얻기 위해서 큰 아버지 이스마엘에게 가서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합니다.(28:9)

창세기 28:6–9 (NKRV)
6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7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이렇게 해서 에서의 아내는 3명이 된것입니다.

만약, 그 당시 연예 스포츠 신문이 있었다면 이런 헤드라인 뉴스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인기 많은 짐승남 동시에 2명의 아내를 얻다",
"부모와 갈등 중인 아내들 때문에 또 한명의 아내를 얻다, 알고보니 부모가 원하는 결혼 하고 싶어.."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 발견하셨나요?
바로, 에서의 아내의 이름들이 헷갈린다는 겁니다.??

에서가 먼저 얻은 2명의 아내는 가나안 여인으로 헷 사람의 딸들입니다.
‘유딧’이라는 여인은 헷족속 브에리의 딸, 그리고 ‘바스맛’이라는 헷족속 엘론의 딸입니다.(창 26:34) 그리고 마지막으로 얻은 이스마엘의 딸이자 느바욧의 누이의 이름은 ‘마할랏’입니다.(창26:9)

하지만, 오늘 본문인 창세기 36장 2-3절에 나온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다’라는 여인이고, 헷 사람 엘론의 딸, 히위 사람 시브온의 딸 아나에게서 태어난 '오홀리바', ‘ 바스맛’으로 큰아버지(이삭의 배다른 형)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입니다.

앞에 나왔던 아내들의 이름을 A라고 하고, 에서 족보로 정리된 아내들의 이름을 B라고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A> 유딧: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창 26:34),
        바스맛: 헷 족속 엘론의 딸 (창 26:34),
        마할랏: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창28:9)

<B> 아다: 헷 족속 엘론의 딸(창 36:2)
        오홀리바: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 아나의 소생(창36:2)
        바스맛: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창36:3)

왜 아내들의 이름이 다를까요?? 이를 두고 성경이 오류가 있다 논쟁이 있기도 한데요(에서의 아내 검색)

일단, 이 두개의 다른 버전을 정리하면 이런 차이들을 찾을수 있습니다.

#1. 바스맛이라는 이름은 겹치지만 소속이 다릅니다.
A: 한명은 헷족속 에론의 딸(26:34)이고,
B: 다른 한명은 이스마엘의 딸입니다.

#2. 엘론의 딸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A: ‘바스맛’이 엘론의 딸(26:34)인데,
B: ‘아다’가 헷사람 엘론의 딸입니다.(창35:3)

#3. 이스마엘의 딸은 겹치지만, 이름이 다릅니다.
A: 마할랏(28:9),
B: 바스맛(창36:3)

#4. 이스마엘의 딸을 제외한 2명 출신이 다릅니다.
A: 유딧, 바스맛 모두 헷족속(26:34),
B: 아다만 헷족속이고, 오홀리바는 히위 사람(36:3)

책을 좀 찾아보니 이를 설명하기 위한 학자들의 설명은 크게 3가지 입니다.

첫번째, 같은 여자들인데 다른 이름을 사용했을 수 있다.

  • 이 설명이 가능한 경우는 #2와 #3, 그리고 #4 중에 한명에 해당합니다.
  • #3의 오홀리바는 히위 사람이고 나머지 3명의 이름은 헷족속입니다.
  • 하지만, 히위 사람과 헷 족속이라고 다른 출신을 이야기 했지만 같은 인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시: 히위 사람 시브온이 아버지, 헷 사람 브에리가 어머니)

두번째, 다른 여자가 같은 이름을 사용했을 수 있습니다.

  • 이것은 #1, #2, #3에 해당합니다.

마지막 설명은 3명 이상의 아내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 첫번째와 두번째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열려있는 가능성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어떤게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세가지 설명을 모두 종합하는 것도 나빠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에서는 가나안여인 중에서 2명의 아내를 얻었고, 이스마엘의 딸 한명을 아내로 얻어서 그들에게서 5명의 아들과 그 외에 딸들을 얻었다는 것입니다.(36:6)

헷 사람과 히위 사람은 엄연히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가나안 사람입니다. 에서는 한해에 (또는 동시에) 두명의 아내를 얻을 정도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잘나가던 에서는 자신의 결혼이 부모님에게 근심이 된다는 것을 알고는 아버지 이삭이나 동생 야곱처럼 친족에게서 아내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결혼을 여러번 한 것을 두고 에서의 인생이 하나님께 택한 야곱보다 못나서 망가진 것이라고 하긴 좀 그렇습니다.

물론, 아내를 2명을 얻고, 또 다른 아내를 얻는게 성경적으로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에서의 아내 이름이 다양한 것을 두고 마지막 설명처럼 에서가 3명 이상의 아내와 함께 살았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정리하는 족보에 남는 아내는 3명이었다는 것이 더 막장스러운 이야기를 상상해볼수도 있는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누가 죽던지 버림 받았던지 하고 최후로 3인이 남았으니..)

그래서 이쯤 오면 에서의 잘못을 콕 집어서 비난하거나 조롱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나쁜 사람 이미지를 씌우려는 에서는 공식적으로 4명의 아내와 12명의 아들과 한명의 딸을 가진 야곱에는 미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가계도

2. 성경 그대로 읽기 - 화해의 이별

제가 성경을 대할 때 재미와 매력을 느끼는 건.. 이런 이야기를 안 감춘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각색하고 싶은 충동이 들것 같은데 다소 혼란스럽더라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에서의 아내들의 이름이 다른 것을 후대 기록자의 실수로 보기에는 너무나 얽혀있어서 그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대하는 제가 보는 에서는 "상남자로 잘 나가던 에서"이면서도 "부모의 마음에 근심이 되기 싫어서 다른 가능성을 찾는 애뜻한 모습"입니다.

여기까지 이르니 이제는 오히려 이삭과 리브가가 좀더 에서와 야곱을 사랑으로 키웠다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편애 속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어울리기보다 속이고 속는 관계로 죽이려는 자와 도망하는 자로 헤어졌던 에서와 야곱은 이제 더 이상 갈등하지 않습니다. 그 증거로 에서와 야곱은 함께 아버지 이삭의 장례를 치렀습니다.(창35:29)

창세기 35:29 (NKRV)
29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그 뒤에 에서는 아내들과 아들들과 딸들과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가지고 야곱에게서 떠나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창36:6). 싸우고 다퉈서 패배해서, 복을 받지 못해서 떠나간게 아니라.. 두 사람(야곱과 에서)이 재산이 너무 많아서 함게 살수 없어서(특히 집짐승이 많아서).. 그래서 에서가 세일 산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36:7,8). 이면만 보자면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소유가 많아졌을때 그 목자들이 싸워서 갈라섰던것보다 더 성숙한 이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기까지는 야곱이 얍복강에서 만난 하나님, 야곱이 세겜에서의 곤란한 상황에 있을 때 베델로 부르신 하나님을 간과할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하나님 뜻이 무엇이었고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서 누구를 편애하듯이 축복하고 누구를 미워하며 저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이렇게 야곱과 평화롭게 마무리 되는 에서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자세히 보기 전에는 예상치 못했는데.. 참 훈훈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어릴적에 들었던 설교는 너무나 쉽게.. 너무나 빨리.. 에서와 야곱의 잘잘못을 짚어내며 어떻게 살지 않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야곱도 나쁘다 싶으면서도 둘째인 야곱의 편에서 에서는 무식하고 힘쎈 성질급한 사람으로 치부했었습니다. (사실 나도 첫째면서.. 괜히 둘째가 더 좋아보이고.. ㅠ.ㅠ)

하지만 이제 커서 어른이되고, 목사가 되고 성경을 다시 읽어보니, 성경은 그저 그들의 인생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잘했다 잘못했다 하는 본문들도 명확하게 많지만 적어도 이 본문만큼은 에서의 복잡한 아내 문제나 야곱과의 갈등이 아니라 그냥 사실들만 기술하며 에서가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잠시 이전에 가졌던 생각을 멈추고 성급히 판단하고 딱지를 붙이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성경을 그냥 읽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나니 우리의 인생도.. 다른 사람의 인생도.. 잘 살고 싶고, 잘 살았으면 좋겠지만... 그 치열한 인생을 잠시... 있는 그대로 봐주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내를 3명이나 4명을 얻어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구요! ㅎ)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의 인생" 역시 좌충우돌 하며 잘 살고 싶어하는 삶이고,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어 새로운 화해의 역사,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하니까요.. 

우리의 실수와 욕심에도 불구하고 회복과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는 삶이 되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샬롬.